산업현장 인명사고 땐 최소 5년 옥살이…기업인에 '살인죄급 형량'

입력 2020-12-13 17:15   수정 2020-12-14 02:33

부산 사상구에서 10여 년째 염료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폐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임차한 공장부지 계약 기간이 1년 남짓 남은 가운데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기준에 맞춰 시설을 개선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수억원을 들여 시설을 바꾸지 않으면 김 대표는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화관법 위반 기업의 처벌 유예가 올해 말로 끝나 내년부터는 현장 단속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가 현장 사정을 외면한 채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나라에선 더 이상 사업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반(反)기업 법안이 무더기로 국회를 통과하는 가운데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대거 포함되면서 기업 활동을 짓누르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예방 효과도 없으면서 기업인을 형사처벌하겠다고 겁박하는 ‘처벌만능주의 법률’이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인 형사처벌 조항 수두룩
여권에서 추진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관련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10억원 이상의 벌금을 내는 처벌 규정을 담고 있다. 내년부터 30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로제도 마찬가지다. 근로자가 이를 위반하면 기업인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기업에 적용되는 화관법도 기업인 형사처벌 규정을 담고 있다. 방지벽·경보장치 설치 등 336개에 달하는 시설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기업 대표가 최고 5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이처럼 형사처벌을 기반으로 하는 반(反)기업법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배경엔 기업인을 의심의 색안경을 끼고 보는 ‘기업인 유죄추정주의’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전직 고위관료는 “입법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기계적으로 기업규제 법률에 ‘징역 3년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와 같은 벌칙조항을 삽입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과태료나 과징금 등 행정벌로 처리해도 충분한 규제에 관행적으로 형사처벌 조항을 넣으면서 많은 기업과 국민을 예비 범죄자로 몰아넣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도한 형량 문제도 제기된다. 화관법에서 정한 기업인 형량은 본인 또는 친족이 살해 위협을 받아 저지른 살인을 뜻하는 ‘참작 동기 살인’(징역 4~6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처벌 강화에 대한 실효성도 논란이다. 이미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비슷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올해 1월부터 처벌 기준을 강화해 시행됐지만 올 상반기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는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5명, 사고 재해자 수는 1486명(3.5%) 늘었다.

근로자의 부주의나 과실로도 기업인이 처벌받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예를 들어 산업재해 사고는 여러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실상 그 책임을 모두 사업주에게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법의 과잉 적용으로 기업인을 범죄자로 대거 내모는 이른바 ‘과잉범죄화’는 기업 성장을 막고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큰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오너가 경영하는 中企 ‘직격탄’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은 주로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대기업보다 오너가 직접 경영하는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 큰 후폭풍을 몰고 온다. 중소기업의 99%는 오너가 회사 대표를 맡고 있어서다.

중소기업인 사이에선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 같다”는 얘기가 많다. “형사처벌 조항이 크게 늘어 자칫 옥중경영을 해야 할 판”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도 나온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기업인을 인신 구속하는 형사처벌은 곧 기업활동을 중단시킨다는 의미”라며 “회사 도산으로 이어져 근로자는 물론 협력업체까지 연쇄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정선/김병근 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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