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그토록 애써왔던 게 도쿄 인구 집중 억제정책이다. 아베 신조 전 정부는 지방재생장관을 신설하고 도쿄 인구를 분산시키려 했지만 그럴수록 도쿄 인구는 늘어났다. 저출산 고령화로 지방에서 인구가 줄어들자 일본인들이 오히려 도쿄를 찾은 것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부동산 투자가들은 도쿄를 투자 1순위로 꼽기도 했다. 인구가 줄지 않으면서 투자의 안정성이 담보됐기 때문이다.
대도시 인구 감소는 도쿄만의 상황은 아니다. 미국에선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다. 정치전문지 더힐에 따르면 뉴욕은 팬데믹 상황에서 최소 30만 명의 주민이 떠났고 샌프란시스코에선 9만 개 이상의 주소가 변경됐다. LA, 시카고 등에서도 주민들이 빠져나갔다. 이에 비해 미국 남부의 내슈빌과 라스베이거스, 오스틴, 피닉스 등에선 인구 유입세가 뚜렷하다. 주로 재택근무자의 대도시 이탈이 확연하다. 이들은 정보기술(IT) 업종이나 사무직 등 고학력 전문직이 대부분이다. 기술근로자의 3분의 2가 시애틀이나 뉴욕을 떠날 것이라는 설문조사도 있다. 이들은 미국 경제 성장의 동력이면서 대도시 성장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이들이 지금 재택근무 상황에서 세금이 낮고 환경이 좋은 도시로 옮겨가고 있다. 재택근무 경제(WFHE·work-from home economy)시대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퇴자들의 대도시 탈출도 눈에 띈다.
코로나19가 일으킨 도시의 재편이고 도시의 분화다. 도시는 인간 문명의 발전과 함께 여러 옷으로 갈아입었다. 산업혁명 이후 전개된 산업화 시대에선 초고층화로 상징되는 공간 밀집의 대도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생산 활동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본과 인력 기술이 도시 공간에 집적됐고 일과 주거지가 분리됐다. 도시 집적의 이익은 그만큼의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다시 도시가 패러다임을 바꾸려 한다. 코로나 사태와 맞물린 디지털과 클라우드 기술 발전이 이를 더욱 촉발시키고 있다. 도시 유입 인구가 줄어들고 거주자들도 틈만 있으면 나가려 한다. 글로벌 대도시에선 인구 감소가 가파르고 중간 수준의 도시들이 스타로 빛난다. 마치 제품에도 이제 기능성보다 연결성이 강조되듯이 도시에도 공간 집적보다 공간 연결성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연결성은 업무와 개인 생활이 중첩되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뉴욕 예산국은 향후 세금 수입이 90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출자가 많아 세금이 줄어들면 도시 서비스는 악화되고 치안도 보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이런 재정 문제는 코로나가 끝나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과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직종 간의 격차 문제도 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람은 기술자와 고학력자가 대부분이다. 산업화 시대의 산업보다 정보화 관련 직종이 많기 때문이다. 디지털 디바이드가 아니라 ‘리모트워크 디바이드’로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많은 대도시가 이 같은 대변화에 준비하고 있다. 파리는 직장과 오락시설에 단시간에 갈 수 있는 15분권 도시 구상을 추진한다. 일하는 젊은이들의 도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은 20분 내에 모든 게 해결되는 ‘20분 이웃’ 제도를 만들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은 재택근무와 기존 사무실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태의 도시를 모색하고 있다. 독일 또한 재택근무를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도시가 코로나 이후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도시는 단지 경제적인 게 아니라 시민을 창조하고 새 산업을 낳는 공간이다. 법과 제도도 도시를 기반으로 생겨난다. 바이러스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디지털화를 더욱 추진해 비약적으로 기술 진보를 일궈냈다. 다시 재창조를 위한 걸음이 시작됐다. 한국 대도시도 이제 도시의 패러다임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과연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인구를 유지하면서 도시를 어떻게 꾸려갈지 준비가 돼 있는지 궁금하다.
새크라멘토 전입순위 1위…전출은 뉴욕이 가장 많아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그동안 거주했던 캘리포니아주를 떠나 텍사스 오스틴에 정착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오라클 또한 오스틴으로 이주했으며 휴렛팩커드도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텍사스 휴스턴으로 옮겼다. 캘리포니아의 높은 법인세가 걸림돌이었다.
3분기에 인구 유출이 가장 많은 도시는 뉴욕이 1위를 차지했고, 이어 샌프란시스코, LA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도시는 대부분 높은 소득세율을 적용한다. 뉴욕 거주자의 주소득세 최고세율은 8.82%이며 시에서 가져가는 시세만 해도 3.82%다. 골드만삭스 등 금융기업이 뉴욕을 떠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택근무자들이 이런 대도시를 떠나려는 이유에는 환경도 있지만 높은 세금 부담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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