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정성인 VC협회장, "벤처투자 시장 거품 논란은 아직 일러...혁신 중심으로 사회 시스템 재편해야"

입력 2020-12-15 18:19   수정 2020-12-15 18:20

≪이 기사는 12월15일(17:19)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00년대초 IT거품 속에 네이버, 카카오, 셀트리온이 탄생했고,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벤처투자 시장을 두고 거품 논란이 있지만 제2의 네이버 카카오를 키워낼 수 있다면 경제 전체적으로 충분히 해볼 만한 장사입니다."

정성인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프리미어파트너스 대표·사진)은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0년 이후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3배가 늘었지만 연간 벤처투자 규모는 이제야 2배를 갓 넘겼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 회장은 올해를 "벤처 산업이 '유망주'를 넘어 기존 산업을 대체하는 '중심축'으로 떠오른 원년"이라 평가했다. 그는 "코로나 대유행 이후 전 산업군에 걸친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벤처기업의 성장세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벤처투자 없인 국가, 기업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을 뒷받침할 제도 개선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처음부터 완벽해 모두가 동의하는 정책은 없다"며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허용, 코스닥 시장의 분리 운영, 벤처투자 양도차익비과세 등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문제 등 성장이 남긴 고민도 내비쳤다. 지난해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를 둘러싸고 벌어진 택시업계와 벤처기업 간의 갈등이나 요기요 운영사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의 합병을 사실상 불허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 등이 잇따르면서다.

정 회장은 "혁신을 통해 새로 개척된 분야는 단기적으로는 독과점을 전제로 한다"며 "이를 기존의 틀에 맞춰 규제하려고만 하면 신산업을 키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 기능이 살아있다면 독과점의 횡포는 새로운 경쟁자에 의해 제어될 것"이라며 "정부가 할 일은 새로운 경쟁자가 나올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 한해 벤처투자 시장을 평가하자면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장을 일시적으로 위축시키기도 했지만 벤처투자 업계에 있어선 오히려 촉진제가 된 한 해였다. 실물 경기는 위축됐지만 비대면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산업엔 기회였다. 비대면 경제를 뒷받침하는 5세대 통신망(5G),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과 바이오·헬스케어 등 이미 성장이 예상됐던 혁신 분야의 성장이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그동안 국내 경제에서 스타트업이 갖는 의미는 일자리 창출이나 기술개발에 도움이 되는 '유망주' 정도로 취급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쿠팡, 배달의민족 등 10여개의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이 탄생했지만, 이들이 한국의 기존 산업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쿠팡, 무신사 등 유니콘들이 유통 산업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셀트리온 등 벤처기업이 코스피 시가총액 톱10으로 부상하며 우리 나라도 신성장산업이 주도하는 경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이 거품이라는 지적도 있다

2000년대 초반 IT버블(거품) 얘기가 나왔을 때 국내 연간 벤처투자 규모가 2조원을 넘겼다. 거품이 터지고, 15년이 지나서야 그 수준을 회복했고, 최근 5년 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벤처붐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4조원까지 성장했다. 20년 사이 한국 경제의 명목 GDP는 3배 이상 높아졌다. 벤처투자 시장은 이제 2배가 커졌다. 분야에 따라 부분적으로 부담스러운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 거품을 지나치게 우려할 때는 아니다.

오히려 혁신을 위해선 어느 정도의 거품이 필요하다. 20년 전 IT버블 당시 해방 이후 50여년만에 처음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대기업을 나와 벤처회사를 차렸다. 그 당시 투자를 받은 벤처기업이 모두 망하고 네이버, 카카오, 셀트리온만 살아남았다고 가정해도 몇 배를 벌었다. 20년만에 다시 우수한 인재들이 창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똑똑한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장에만 안주해선 제2의 네이버, 카카오가 나올 수 없다.

▷국내 비상장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이 과도하다는 말도 나온다

유동성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부분적으로 실질 가치 이상으로 기업가치가 부풀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결국 잘못된 밸류에이션의 대가는 투자자 자신들이 진다. 비상장 벤처투자 시장은 철저히 사모 방식으로 이뤄진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운용사는 출자자(LP)들로부터 외면 받아 도태된다. 손실은 철저히 사모투자자들이 진다.

한국 시장에서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이 의미가 있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배달의민족이 5조원에 육박하는 가격에 매각된 것처럼 비즈니스 모델만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인정을 받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크래프톤 등 게임 유니콘들은 이미 매년 수천억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런 회사들은 기업가치 수십조원도 내다볼 수 있다.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뛸 수 있는 기업은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다. 미국판 '배달의민족'인 도어대시는 상장 후 증권 시장에서 시가 총액이 6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나 신약 개발, 게임 등 비즈니스는 국경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미리 성장의 한계를 정할 필요는 없다. 그보단 우리 기업을 글로벌 유니콘으로 키울 수 있는 길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더 많은 유니콘을 키우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벤처펀드의 대형화가 일단 답이 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벤처투자 육성의 초점은 유니콘을 길러내는 '스케일업'에 있었다. 당장 5년 전만해도 손에 꼽을 정도였던 1000억원 이상 대형 벤처펀드들이 이젠 수십개에 달할 정도로 늘었다. 2000억~3000억원 규모 벤처펀드들도 등장했다.

대형펀드들의 등장은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판도를 바꿔나갈 것이다. 그간 국내 유니콘의 탄생은 외국계 운용사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 이제는 국내 운용사도 초기 투자뿐 아니라 상장전투자(pre-IPO)등 후기 단계 투자까지 영역을 넓히고 전략도 다양화할 것이다. 국내 벤처펀드의 대형화는 기본 투자 단위가 큰 해외 투자자들의 국내 벤처펀드 출자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해외 자본이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결코 지양해야할 자세다. 이미 글로벌 투자 시장에선 국경이 의미가 없어졌다. 글로벌 투자자들에겐 막강한 현지 산업 네트워크가 있다.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 유니콘이 되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과 한국자본이 뛰어놀 시장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들이 한국에 투자하는만큼 우리도 세계에 투자하면 된다.

▷시장은 커졌지만 여전히 정책자금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 정책자금은 손실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벤처투자에 투입된 정책자금은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거둬왔다. 모태펀드가 투자한 펀드의 평균 연수익률은 6.4%에 달한다. 오히려 다른 정책 대비 성과에 비해 덜 지원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물론 향후 연간 벤처투자 시장 규모가 50조원, 100조원으로 성장할 때까지 정부 자금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행인 것은 최근 3년 사이 정책자금 출자가 대폭 늘었지만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서 30% 수준으로 낮아졌다. '매칭'을 전제로 하는 방식이기에 정책자금이 늘어난만큼 새로운 민간 투자자의 저변도 확대됐다는 뜻이다.

▷시장이 커지면서 운용사 수도 비약적으로 늘고 있다

긍정적인 현상이다. 창업투자회사(창투사) 숫자가 2016년 120개에서 올해 9월 165개로 늘었다. 벤처투자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기업의 수도 크게 늘었다. 벤처캐피탈 경쟁력의 원천은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전문성에 있다. 한국에선 아직 개별 VC만의 전문화된 역량이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독자적 전략을 갖춘 VC들이 더 많이 생겨야 업계가 성장한다.

▷양적 성장에 걸맞는 질적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나

아직 국내 시장에선 정책투자기관이나 민간 출자자(LP)가 제시한 방향에 따라 운용사의 전략이 좌우되는 측면이 있다. LP 출자사업과 관계 없이 운용사가 독자적 전략과 트랙레코드를 바탕으로 펀드레이징에 나서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선 부족한 부분이다.

한국의 여건 상 단기적으론 LP들의 출자 사업이 보다 고도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LP들이 투자 대상 업종, 성장단계, 지역 등을 전문화, 다변화할수록 운용사들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독과점, 기존 산업과의 갈등 등 사회적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를 둘러싸고 벌어진 택시업계와 벤처기업 간의 갈등으로 결국 타다는 서비스를 중단했다. 작년 말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을 4조 8000억원에 인수하며 한국 벤처투자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독과점 문제 등을 들어 인수 조건으로 딜리버리히어로가 기존에 운영 중이던 요기요를 매각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문제들은 독과점 기업의 탄생을 전제로 하는 플랫폼 산업을 사회가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남기고 있다. 일단 벤처투자자로서 나는 어떤 업종에서도 혁신으로 새롭게 창출된 산업은 필연적으로 독점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혁신의 결과로 나타난 독과점에 대해선 과거와는 다른 틀이 필요하다.

먼저 시장을 무엇으로 볼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찻잔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네모난 잔만 있던 찻잔 시장에 어떤 기업이 동그란 잔을 내놔 돌풍을 일으켰다. 일시적으로 이 기업은 동그란 찻잔 시장의 독점 기업이다. 하지만 얼마 안 지나 네모난 잔을 만들던 기업들이 뒤따라 동그란 잔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경쟁이 붙는다. 빠르게 성장하는 새로운 산업에서 독과점은 영원하지 않다. 10년 전 이베이가 G마켓을 인수할 때 전자상거래 시장 독과점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됐나.

과거의 틀로 재단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산업이 클 수 없다. 0과 1을 선택하는 사회가 아니라 그 중간점을 찾아나가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경쟁자가 나올 수 있는 제도나 시스템을 만들고, 새로운 산업으로 대체되는 기존 산업을 보듬어주는 일이다. 일단 막고 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구글, 페이스북 등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문제는 이미 불거지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문제를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 여전히 대기업 의존도가 절대적인 시장에 대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시장의 힘을 더 믿을 필요가 있다. 과연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등이 시장의 독과점 기업이 돼 소비자 효용을 해칠 정도의 폐해가 생겼을 때 과연 소비자들이 그대로 순응하겠나. 다른 사업가들이 그런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보겠나.

▷대기업의 기업주도형벤처캐피털(CVC) 허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크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를 만들 수 없다. CVC 허용은 국내 벤처투자 업계의 오랜 과제인 회수 시장 활성화와 대기업들의 벤처투자 확대를 이끄는 첫 걸음이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0이나 1에 있는게 아니라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불완전한 시작이라도 일단 첫 발을 떼고 문제가 발생하면 차차 해결해나가도 늦지 않다.

▷CVC가 민간 LP자금을 흡수하면서 되려 독립계 운용사들의 설 자리를 뺐는다는 지적도 있다

스타트업은 어느 순간 성장의 벽에 부딪힌다. 국내서 어느 수준까지 클 순 있지만 이를 해외로 끌고 나가는 것은 대기업들의 힘이 필요하다. 국내 VC들은 아직 투자 기업을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시킬 수 있는 역량은 부족하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CVC들은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기존 VC가 키워낸 기업의 밸류업을 도울 수 있다. 제로썸 게임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벤처투자는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전문화·다변화가 수익으로 이어진다. 이미 많은 대기업이 내부 조직을 통해 벤처투자를 하면서도 상당 부분은 민간 VC에 출자한다. 자신들이 잘 아는 분야는 직접 투자를 하지만 잘 모르는 분야는 외부 전문집단에 맡긴다. 소위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장기적으로 CVC는 벤처투자 시장을 한 단계 성장시킬 것이라 본다.

▷올해 벤처투자촉진법(벤촉법) 제정이 이뤄졌는데 그 의미는

벤처투자 산업이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 받고, 국내로 국한됐던 투자의 범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확대된 것이 벤촉법 제정의 가장 큰 의의다. 그 전까진 벤처투자 산업과 관련된 법이 없었다.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특법)과 중소기업창업 지원법(창진법)은 말 그대로 창업 지원에 관한 법이었다. 이 법 안에서 벤처투자는 하나의 산업이 아닌 지원 역할에 그쳤다. 해외 투자를 하려 해도 법이 제동을 걸었다. 법의 목적이 국내 창업 진흥이었기 때문이다.

▷향후 벤처투자업계 발전을 위한 과제가 있다면

국내에 머물지 말고 투자도, 펀드레이징도 전 세계를 무대로 하라는 것이 벤촉법이 업계에 던지는 과제다. 국내를 넘어 해외서 독자적으로 딜을 발굴하고, 해외 투자자들을 유치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내는 것은 결국 운용사들의 몫이다.

회수 시장의 발전도 중요하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코스닥과 코스피의 분리운영, 즉 코스닥의 독립이다. 벤처기업의 상장 통로인 코스닥은 지금 코스피 시장의 2부 시장으로 전락했다. 기업이 코스닥 시장에서 조금만 성장하면 코스피 시장으로 올라간다. 자본시장의 큰 손인 국민연금 등 연기금 등 기관 투자는 코스피만 몰린다.

성장률이 높은 기업도 코스닥 시장에만 올라가면 코스닥 수준의 평가를 받는다. 좀처럼 기관들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래선 창업과 벤처투자의 유인을 키울 수 없다. 코스닥 시장은 성장 기업이 모인 시장으로 재편해 실적 중심의 코스피와 차별화해야 한다. 코스닥이 살아나면 회수 시장은 자연히 살아난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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