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서재] 부채중독 사회는 언젠가 큰 대가 치른다

입력 2020-12-16 17:45   수정 2020-12-17 00:08

저금리와 디플레, 양극화와 실업. 오늘날 선진국 경제의 깊은 환부들이다. 경제는 어려워지고 사회 갈등은 늘고 있지만, 해결할 묘방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논자들이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 변화와 자본가의 탐욕 등을 원인으로 지목하곤 하지만,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인구 변화에 눈길을 돌리면 전혀 다른 방향의 분석이 나올 수 있다.

런던정경대(LSE) 금융경제학 석좌교수 찰스 굿하트와 거시경제 분석가 마노즈 프라드한은 《거대한 인구 역전(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에서 인구 변화 관점에 비춰 볼 때 지난 30년의 글로벌 경제 추세는 조만간 완전히 역전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앞선 시대와 달리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글로벌 거시경제의 판도를 뒤바꾼 핵심 동력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국의 막대한 농촌 인구가 저임금 산업노동력으로 대거 유입된 현상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 주도로 이뤄진 세계화다.

사태의 발단은 20세기 중반까지 글로벌 경제를 지배했던 미국 제조업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서서히 역외로, 구체적으로는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는 데 있다. 다른 선진국 기업들도 잇따라 이를 따르기 시작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기에 소련 몰락 후 동구권 국가의 노동력까지 가세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저렴한 신흥국 공산품이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등에 업고 쏟아져 나오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미국에서 정보기술(IT)과 바이오를 중심으로 날로 기술 혁신이 일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할 대부분 투자는 미국 바깥에서 이뤄졌다. 글로벌 노동인구 유입으로 기존 노동계층의 협상력은 약화됐고, 미국 백인 노동자 중산층의 몰락이 시작됐다. 급기야 반(反)세계화, 반엘리트, 반이민주의가 대두되고, 국익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국발(發) 지각 변동도 이제 끝날 때가 됐다. 대신에 앞으로는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요인이 글로벌 경제를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할 것이다. 그 메커니즘의 핵심은, 생산인구는 날로 줄어드는 대신 소비만 하는 인구는 계속 늘어난다는 사실에 있다. 경제 성장 둔화, 저금리, 연금 고갈 가능성 등 세 요인은 서로 강화하는 악순환 구조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날로 늘어나는 고령층을 부양할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가? 정치인들은 당장 증세나 통화 증발을 추구하려 들겠지만, 생산 및 소득 증가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코 지속가능한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증한 통화량은 대개 은행 준비금으로 유보되거나 부동산, 주식 등 자산 매입으로 흘러들었다. 그 결과 경제 성장은 이뤄지지 않았고 자산 가격만 폭등했을 뿐이다.

앞으로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퇴조하고 자국 우선주의가 정말로 힘을 얻게 된다면, 고령화로 수요 대비 생산이 과소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와 그동안 풀린 과다한 통화량이 원인이 돼 인플레이션이 재연될 것이다. 역내에서는 노동인구 부족으로 명목임금과 명목금리가 상승하겠지만, 인플레로 인해 오히려 실질 지표는 하락할 것이다.

이때 가장 두려운 사태는 ‘부채 함정’이 몰고올 위기다. 그동안 기업, 가계, 정부를 막론하고 거대한 부채 압박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원인은 저금리 기조에 있다. 하지만 명목금리 상승이 표면화되면 수많은 채무자가 쓰러질 것이다. 국채조차도 그런 압박에서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야기한 생산활동 위축, 필수소비 유지, 재정지출 증가가 맞물리면서 그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전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경제이론 따위는 다 잊고 고령화가 야기할 심각한 변화에 대응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 그리고 한 나라의 생산이 위축되는 와중에 가계와 정부를 막론하고 부채에 중독돼 가는 사회는 언젠가 반드시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저자들의 경고만큼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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