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주가 3000 가냐고 묻는다면

입력 2020-12-16 17:48   수정 2020-12-17 00:23

지난 3월 코로나 공포가 온 사회로 퍼졌다. 불안에 떨었다. 중첩된 불안이었다. 생명과 안전이 첫 번째였다. 가게 문을 닫게 된 사람들은 생업에 위협을 느꼈다. 직장인들은 일자리가 사라질까 두려웠다. 투자자들은 공포스런 주가 급락을 경험했다. 기업들도 그랬다. 세계적인 마이너스 성장 앞에 대책이 있을 리 만무했다. 기업을 바라보는 제3자는 불안요소 한 가지를 더 떠올렸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이겨낸 이건희 정몽구 구본무 등 장수들이 전장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불안과 공포에서 가장 빠르게 벗어난 곳은 주식시장이다. 코스피지수 3000. 몇 달 전만 해도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왠지 사기꾼 같았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요즘 자연스럽게 주가 3000을 부르고 있다.
준비된 한국의 기업들
어떻게 상황이 급변했을까. 방역을 잘해서? 초기 방역이 긍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일부분일 뿐이다. 외국인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도 설명이 충분하지는 않다. 그들은 돈 냄새를 맡는 데 세계 최고다. 먹을 것이 없는 곳에 돈을 베팅할 리 없다.

시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렴풋한 답이 보인다. 한 투자자는 이런 말을 했다. “주가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좋은 기업을 찾고, 그 주인이 되는 게 가장 확실한 투자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과정에서 한국은 이 말에 가장 잘 들어맞는 시장 중 하나였다.

우선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을 보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네이버 현대차 삼성SDI 카카오 LG생활건강 등이다. 오래된 회사는 있지만 오래된 산업은 없다. 반도체, 전기차, 바이오, 인터넷 등 앞당겨진 미래의 주력이 될 영역에 포진해 있다.

대기업집단을 통째로 놓고 보자. 삼성그룹은 반도체·휴대폰·가전에서 시스템 반도체·배터리·바이오로 영역을 넓혔다. ‘부동산 회사로 변신한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현대차는 전기차업체로 돌아왔다. LG그룹은 전자·배터리뿐 아니라 최근 디스플레이까지 회복되며 그룹 전체가 활기를 찾고 있다. 스마트폰은 예외다. SK는 SK하이닉스 등 기존 주력사에 더해 어느 순간부터 바이오 시장의 강자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배터리까지 더해졌다.
아버지의 유산과 아들의 책임
재계 5위 롯데도 전열을 정비 중이다. 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그룹 등의 주가는 대부분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효성은 어쩌다보니 그룹 포트폴리오가 그린뉴딜 중심으로 짜여 있어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야구 빼고 다 안 된다는 두산조차 몸집 줄이기를 통해 재기를 준비 중이다. CJ는 핵심 계열사인 제일제당 실적이 좋아 그룹 전체가 편안할 정도다. CJ가 문화계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다.

주가는 기업가치의 합이다.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 기업도 위기에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게 올해 증시다. 게다가 삼성, 현대차, LG가 나란히 승계 과정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성과는 숫자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혹자는 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준비된 자의 성공을 행운이라고 하고, 준비하지 않은 자의 실패를 불운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진화를 거듭하며 준비한 과실을 따고 있다.

그룹을 승계받아 전면에 나선 이재용 삼성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은 더 무거운 책임을 느낄 듯하다. 이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판을 짠 것은 그들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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