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가 바꾼 삶

입력 2020-12-17 17:36   수정 2020-12-25 18:51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1986년 어느 여름날, 네 살 많은 누나의 성화에 억지로 따라간 곳은 충북 음성 꽃동네에 있는 지적장애인 생활시설. 마지못해 빨래를 도우면서도, 머리속엔 당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생애 첫 봉사활동의 기억은 그랬다.

매년 100시간 넘게 봉사활동에 나서는 김상덕 아모레퍼시픽 부장(50)의 얘기다. 경기 오산 사업장에 근무하는 그는 주말마다 가족이 있는 청주에 내려가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을 한다. 중증·지적장애인 시설의 일손을 돕는 것은 기본이고 장애인 보호작업장 배식 및 청소, 공예관 안전사고 관리, 어린이박물관 청소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을 수시로 찾아간다. 지난 10일 충북 청주시 서문동 청주YMCA한국어학당에서 만난 김 부장은 “10년째 봉사활동에 중독돼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 부장이 봉사활동의 매력에 빠진 것은 2010년. 아들 손을 잡고 한 척수장애인 생활시설에 갔을 때였다. 아들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교육 목적이었다. “눈을 마주친 시설 장애아동이 활짝 웃어주는데,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뻐근하더군요.” 이날부터다. 김 부장은 주말마다 이곳을 찾았다.


교통사고로 척수를 다쳐 1급 장애인이 돼 웃음을 잃은 아동을 만난 뒤로는 그 마음이 더 깊어졌다. 이 아동을 웃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사회복지사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장애인을 보듬는 법을 공부했다. 장애인과 공감대를 쌓으면서 그들의 행복에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도 땄다. 김 부장은 “유대감을 쌓으려고 심리학 책도 많이 봤다”고 했다. 몇 달에 걸친 김 부장의 애정공세에, 그 아동은 결국 웃음을 보였다. 삐뚤빼뚤 적은 손편지도 손에 꼭 쥐어줬다. “행복을 나눠줄수록 더 큰 행복감이 들더라고요. 봉사활동을 안 하고는 못 살겠어요.”

김 부장은 지난 6월부터는 이주 외국인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올 들어선 120시간 가량을 봉사활동에 쏟았다. 내년엔 200시간이 목표다. 그의 SNS 프로필에는 ‘나눔이 세상을 풍성하게 만든다’는 좌우명이 적혀 있다. 김 부장은 “은퇴할 무렵에 장애인시설을 만들어 한 명이라도 더 돕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둘러보면 곳곳에 김 부장과 같은 ‘열혈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퇴직 후 호스피스병동에서 음악봉사를 하는 사람도 있고, 회사 인사고과 때문에 점자책 제작에 나섰다가 ‘봉사의 맛’에 빠진 이도 있다. 지난해 총 419만1548명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이들의 봉사활동 시간을 모두 합치면 9468만5592시간이다.


이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엔 공통점이 있다. 남을 도울 때 스스로도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 스무 살 때부터 소아암 환자에게 모발을 기부해온 삼성디스플레이 사원 오현화 씨(27)는 “내 작은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난다”고 했다.

학창시절 숙제하듯 봉사활동 시간을 채웠던 기억은 이들에게도 있다. 하지만 이젠 삶의 일부가 됐다. “10대 때는 돈이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막상 해보니 달라요.”

자원봉사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봉사활동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 지나가는 노인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것도 모두 봉사활동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다면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작은 손길이 누군가에겐 큰 도움일 수 있다.

청주·용인=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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