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인하 대신 이연…'찔끔' 혜택으로 투자불씨 살아날까 [2021 경제정책방향]

입력 2020-12-17 14:00   수정 2020-12-17 15:24

"빠르고 강한 경제회복과 활력 복원" 정부가 17일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내건 목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전례 없이 위축됐다는 위기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정부는 내년 한 해 동안 내수 활성화를 비롯해 기업 투자 제고 등을 위한 각종 경제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계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요구해온 법인세 인하 등 강력한 인센티브는 담기지 않았다. 여기에 각종 규제 강화 움직임으로 인해 가뜩이나 얼어붙은 투자 심리가 더욱 움츠러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0월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3.3% 감소했다.
법인세율 인하 대신 이연 혜택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내년 기업의 설비투자에 대해 최대 75%까지 가속상각을 한시 허용하기로 했다. 가속상각은 기업의 투자 설비에 대해 감가상각 속도를 높여 초기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다.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비용을 조기 회수할 수 있다.

앞서 올해 6월까지 한시 제공했던 가속상각 혜택을 내년 한 해 추가 연장해주기로 한 것이다. 중소·중견기업은 사업용 고정자산에 대해 내용연수를 75% 줄여준다. 대기업은 신성장기술 사업화시설 등 혁신성장 투자자산에 한해 내용연수를 절반으로 단축해준다.

가속상각은 법인세 이연 효과를 낳는다.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예컨대 1200억원짜리 자산의 내용연수가 6년이라면 매년 200억원씩 감가상각을 하며 비용으로 처리한다. 이를 75% 가속상각하면 설비투자 초기 2년간 매년 600억원씩 감가상각을 하며 비용처리를 할 수 있다. 초기에 비용을 많이 쓴 걸로 장부에 기재되는 만큼 이익이 줄어든다. 기업 입장에서는 전체 법인세 납부 금액은 같지만 초기 납부액이 줄어들기 때문에 투자금액을 조기에 회수하고 이자 비용을 줄이는 게 가능해진다.

다만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이 법인세율을 낮추거나 인하할 계획인 가운데 한국은 2018년 법인세율을 인상한 후 인하 논의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간한 'OECD 회원국의 세제개편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40개국 중 올해 법인세를 인하했거나 연말까지 인하할 계획이라 발표한 곳은 프랑스, 벨기에, 스웨덴 8개국이다.
기업인 이동 및 화물 운송 지원
2021년 경제정책방향에는 코로나19 특수상황에 맞춘 기업 지원 방안도 담겼다. 대표적인 게 '기업인 패스트트랙(fast-track)'이다. 국가 간 이동에 제한이 커지면서 수출기업들은 속을 끓이고 있다. 이에 정부는 기업 수요가 높은 국가를 대상으로 기업들의 예외적 입국을 허용하고 입국절차를 간소화하는 패스트트랙 확대를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기업인 격리면제 신청 절차도 개선한다. 기존에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으로 분산돼있던 '격리면제서' 접수창구를 기업인 출입국 종합지원센터로 단일화한다. 유사서류를 통합해 제출 서류도 간소화한다.

수출기업의 애로 해소를 위해 운송도 적극 지원한다. 선적공간 부족, 운임 상승 등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중견기업을 위해 전용 선적공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국내선사의 임시선박을 월 2척 이상 투입하고 중소·중견기업에게 선적공간 절반을 우선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긴급한 화물 수요가 있는 항로를 중심으로 내년 중 국내선사 신규 선복량 증가분의 45%를 중소·중견기업에게 우선 제공한다.
원·하청 함께 유턴, 사업재편하면 지원 강화
코로나19, 신산업 대두 등으로 기업들의 사업재편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사업재편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인센티브 3종 세트'로 원·하청(수요·공급기업) 간 공동 사업재편을 활성화한다는 구상이다. 수요·공급기업이 공동으로 사업재편을 하면 자산매각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이연 특례 요건을 완화해주고 전용 연구개발(R&D) 자금 등을 우선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또 혁신성·성장가능성이 높은 공동 사업재편 이행 기업을 '혁신기업 국가대표 1000'과 연계하는 등 정책금융 지원도 병행한다.

다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예컨대 내연기관차를 생산하던 원청기업이 전기차 생산 중심으로 사업재편을 할 경우 기존 하청기업의 사업재편을 유도하기보다는 이미 경쟁력을 갖춘 전기차 부품사와 새로 계약을 맺는 게 더 효율적인 선택이 될 수 있어서다. 정부가 제시한 세제 혜택은 세금을 인하하는 게 아니라 미뤄주는 수준에 그쳤다. 정부 관계자는 "코로나19 등으로 수요기업들도 공급망 안정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며 "정부도 내년 중에 공동 사업재편에 대한 지원책을 더욱 구체화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우려가 커진 만큼 유턴(해외진출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도 확대한다. 이때도 수요기업과 부품 공급기업이 수도권 외 지역으로 동반 복귀 시 유턴기업 인정요건을 완화하고 보조금 지원비율도 대폭 상향해준다. 해외생산 규모의 25% 이상 축소해야 한다는 조건을 10% 이상 축소로 완화해주고 투자액의 21~44%인 지원비율을 최대 5%포인트 높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턴 사례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동반 유턴 가능성이 낮은 데다가 수도권 외 지역이라는 조건까지 붙었다. 정부 지원조건을 맞춘 유턴기업은 올해의 경우 지난달 말까지 22곳이었다. 기업들은 통상 인재 채용 등을 이유로 수도권 이전을 선호한다. 이에 정부는 올해 하반기경제정책방향에서 수도권으로 복귀하는 유턴기업에게도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제도를 개선하기도 했었다.
중견·대기업 진출 제한 제도 강화
하지만 일부 규제 강화 움직임은 가뜩이나 움츠러든 기업활동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생계형 적합업종에 대한 중견·대기업 진출 제한을 강화할 방침이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영세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업종에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진출하는 걸 법으로 막는 것이다. 서점, 자동판매기 운영업, 액화석유가스(LPG) 소매업, 두부 제조업과 장류(된장·간장·고추장·청국장) 제조업 등 8개 업종이 지정돼있다.

정부는 특정 업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뒤 대기업 진출을 막는 현행 법에서 나아가 신청만 들어와도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다만 대기업의 진출을 어디까지로 정의할 것인지, 어느 정도로 구속력을 갖출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구체적인 내용은 내년 하반기 중에 마련한다.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 이후 심의까지는 최대 15개월이 소요된다. 예컨대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중고차 판매업의 경우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만으로 해당 업종 중견·대기업은 1년 이상 시장 진입이 차단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중기부 관계자는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려면 먼저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필요한 만큼 중견·대기업의 경영 여건에 단기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 이후 심의 완료까지 오랜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대기업의 선제 진출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기간 경과 후에도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을 예외적으로 허용할 계획이다.

또 정부는 신(新)산업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 간 첨예한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협의체 '한걸음 모델'의 신규과제를 발굴해 추진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앞서 과제로 진행된 도심 내국인 공유숙박, 농어촌 빈집 활용 공유숙박, 산림관광(하동 알프스 프로젝트 등)가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어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내년 1월 1일부터 직원 50~299인 중소기업 역시 주52시간 근무제 시행대상이 된다는 점도 변수다. 올해 말로 계도기간이 종료된다. 5~49인 사업장을 비롯해 버스, 방송, 금융, 대학 등 특례 제외 업종도 내년 7월부터 주52시간 근무제를 준수해야 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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