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후진적 제재 관행 답습하는 금감원

입력 2020-12-23 17:54   수정 2020-12-24 00:19

‘희대의 금융 사기’ 라임 사태가 터진 지 1년5개월. 라임 사태에 연루된 금융회사 제재 절차가 이제야 진행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라임 펀드 판매 및 설계를 지원한 신한금융투자, KB증권, 대신증권에 대한 검사 조치안을 마련한 뒤 제재심의위원회에서 한꺼번에 의결했다. 최종 결론은 내년 금융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라임 펀드를 판매한 은행 관련 제재 절차는 시작도 못 했다.

라임 사태에서 금융회사의 잘못은 자명하다. 불완전판매는 물론이고 사기에 연루된 곳도 있다. 이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1조6000억원대 펀드 사기는 불가능했다. 잘못이 있으면 책임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제재 절차를 지켜보는 이들 모두가 불만이다. 금융권 전체가 아우성이다. 라임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금융당국이 자기반성은 전혀 없고, 금융회사에 선보상을 강요한 뒤 철퇴만 휘두르는 것 아니냐는 심리 때문만은 아니다.

불만의 핵심은 제재 수위가 아니다. 그동안 반복적으로 자행된 ‘꼬리 자르기’ 식의 제재 관행과 불공정한 제재 절차가 라임 사태에서 극에 달했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식 제재 관행은 독특하다. 금감원은 사고만 터지면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물었다. 2018년 직원 실수로 일어난 삼성증권 ‘유령 주식’ 배당 사고 땐 구성훈 사장이 중징계(직무정지)를 받고 물러났다. 취임 후 불과 넉 달 만이었다. 라임 사태에도 전·현직 CEO의 무더기 중징계가 예고돼 있다. 금감원 고위급은 엄정한 제재안을 주문했다고 한다. 일부 CEO 징계 수준이 라임 사태에 직접 연루된 실무진과 같은 수준으로 정해졌던 배경이다.

제재 절차에도 모순이 있다. 금감원은 ‘검찰’처럼 조사와 기소 권한이 있는데, 사실상 ‘법원’ 역할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재심은 금융위 산하인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나 감리위원회와 달리 금감원장 직속으로 운영된다. 최종 제재안이 금융위가 아니라 제재심에서 확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 우리·하나은행 CEO에 대한 중징계(문책경고) 등이 대표적이다.

제재심에서 공정한 법리 공방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법정과 다른 점은 금감원이 징계 처분의 증거를 제재 대상 회사와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2018년 대심제가 도입됐지만 소명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 법리와 증거를 다투는 장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사실 CEO 중징계 사유는 모호하다. 모두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지배구조법 제24조) 혐의다. 판매사들은 금융투자협회 모범규준을 참고해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 자체를 위반했다면서 CEO 중징계를 내리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다. 금감원 제재를 받아들이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미국과 같은 선진 금융당국은 CEO 등 임직원에 대한 인적 제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제재의 본질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신 금융회사에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물린다. CEO 책임은 금융회사 이사회와 주주가 따져 묻는 구조다. 한국도 내년 3월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다. 이제라도 제재 목적과 실효성을 따져 봐야 하는 시점이다.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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