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먹고 자고 '나랏일'까지…침대는 제왕들의 통치 무대

입력 2020-12-24 17:34   수정 2020-12-25 02:07


“침대는 왕궁에서 아주 중요한 가구였다. 침대는 필연적으로 왕의 상징, 군주의 드라마가 펼쳐질 무대가 되었다. 군주는 침대에 앉아서 판결을 내렸는데, 이것이 ‘군주의 침대(the state bed)’다.”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은 고고학자 나디아 더러니와 함께 쓴 《침대 위의 세계사》에서 프랑스 왕가의 전통이었던 ‘군주의 침대’를 이렇게 소개한다. 프랑스 카페 왕조의 루이 9세(1214~1270년)는 “왕이 국정을 수행하는 곳에 언제나 군주의 침대를 두어야 한다”고 법으로 정했다. 부르봉 왕조의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년)는 죽기 이틀 전까지 이 침대에서 정무를 봤다.

저자들은 “침대는 단순히 수면을 위한 가구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결혼과 성생활, 출산의 공간이자 제왕들의 통치 무대다. “고고학에서도 인류 역사에서도 침대와 우리가 그 위에서 보낸 시간들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며 “이 책은 바로 그 빠진 퍼즐 조각을 채우고 있다”고 설명한다.

인류가 언제부터 침대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침대는 남아프리카의 동굴에서 발견됐다. 대략 7만 년 전에 현생 인류가 동굴 바닥을 파내서 만든 침대들이 남아 있다. 영어 베드(bed)는 원시 게르만어 어원에서 ‘땅바닥을 파내서 만든 쉼터’를 뜻한다. 침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미국, 중동, 중남미 등 지구촌 거의 모든 곳의 과거와 현재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들은 로마제국 시기의 침대 형태를 묘사하며 침대의 복합적 용도를 보여준다. 로마제국에선 사용 목적에 따라 침대의 명칭을 구분했다. 수면용 침대는 ‘렉투스 쿠비쿨라리스’, 결혼 후 사랑을 나누는 침대는 ‘렉투스 제니알리스’라고 불렀다. 식탁 역할의 침대도 있었다. ‘렉투스 디스쿠비토리우스’는 3인용 침대 겸 식탁이었다. 오른팔로 음식을 집기 위해 왼쪽 방향으로 비스듬히 앉았다.

침대는 삶의 시작이자 마감의 공간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눕는 침대를 ‘임종 침대’라 부른다. 임종 침대에 누워 있는 이의 곁에 친구들과 가족, 친지와 그 밖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저자들은 “임종 침대의 옆은 사교 공간이자 공적인 장소”라며 “사람들이 임종 침대에 모이는 것은 죽음이 언제나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침실이 ‘완벽한 개인적인 공간’이 된 건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부터다. 도시 인구가 급증하면서 공공위생 문제가 불거졌고, 건강을 위한 독립 침실 인테리어가 생겨났다. 밀집된 도시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욕구도 커졌다.

‘수면의 산업화’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19세기에 형광등과 석유등이 보급되면서 밤의 수면 패턴이 깨졌기 때문이다. 침대는 불면증 치료와 수면제 생산, 수면습관 교정 등 ‘잠을 잘 자기 위한 새로운 산업’의 무대가 됐다.

저자들은 “미래의 침대는 무한한 연결과 완벽한 고립이라는 모순적 성격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머리맡에 전자 기기를 놓으면 안 된다”면서도 침대 위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세상에 접속하는 사람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침대라는 가구를 통해 거시적 역사 분석의 시각을 보여주면서 지루하지 않고 경쾌한 문체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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