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석탄' 지각생 일본, 세계의 우등생 노린다

입력 2020-12-25 17:53   수정 2021-01-24 00:31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면서도 지구 온난화 방지 대책에는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던 일본이 변하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을 통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0으로 만들어 탈석탄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뒤 나라 전체가 석탄과의 작별을 서두르고 있다.
2050년 목표 시점 법에 못 박기로

일본의 탈석탄 선언 시기는 상당히 늦었다. 올해 들어 한국을 비롯해 세계 123개국(10월 말 기준)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실질 배출량을 0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은 출발이 늦은 대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2050년까지 탈석탄 사회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아예 법률에 못 박기로 했다. 지구온난화대책추진법 개정안을 다음달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수십년 뒤의 목표 시점을 법률에 명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탈석탄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2050년까지 전체 전력의 50~60%를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다’는 목표치도 탈석탄 사회 실현 계획에 명시하기로 했다. 30년 뒤의 발전소 구성을 명확하게 수치로 제시하는 국가는 일본이 영국에 이어 두 번째다.

생활 방식과 산업의 판도를 뒤바꿀 정책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고 있다. 2030년대 중반까지 휘발유차와 디젤차 판매를 중지하고, 2040년까지 원자력발전소 45기 규모에 해당하는 4500만㎾ 규모의 해상풍력발전소를 짓기로 했다.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와 운송·제조, 가정·오피스 등 3개 분야를 지정해 배출량을 언제까지 얼마씩 줄이겠다는 로드맵도 내놓는다.

정부가 주도하는 탈석탄 사회로의 이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일본 최대 자동차기업 도요타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이대로라면 일본에서 차를 못 만든다”고 반발할 정도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가 총리는 탈석탄과 디지털화를 정권의 양대 핵심 정책으로 못 박고 내년도 예산안에까지 반영했다.

일본이 이처럼 서두르는 데는 사정이 있다. 일본은 선진국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적은 나라다. 그런데도 경제 회복 속도는 가장 더디다는 지적을 받는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낮은 생산성 때문이다. 스가 정부는 탈석탄화와 디지털화를 저생산성에서 벗어날 동력으로 꼽고 있다.
탈석탄 못 하면 연간 7조3000억엔 써야
국제에너지기구(ITA)는 2050년까지 세계적으로 매년 125조엔(약 1331조원)이 신재생에너지 부문에 투자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통해 2023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3.5% 증가하고 연간 900만 명의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2018년 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투자 잔액은 30조7000억달러(약 3경3755조원)로 2년 만에 30% 늘었다. 일본으로 유입된 자금은 약 2조달러로 전체의 6.5%에 그쳤다. 일본으로 들어오는 자금만 늘려도 성장동력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일본 정부의 계산이다. 스가 총리는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글로벌 녹색투자자금을 일본으로 끌어들여 고용 증대와 경제 성장으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탈석탄 사회로 가지 않으면 2050년께 일본 경제는 세계적으로 강화된 규제에 대응하는 데만 매년 7조3000억엔을 써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지난해 12억130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이를 0으로 만드는 방법은 크게 줄이고, 재활용하고, 없애는 세 가지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특히 에너지 부문이 내뿜는 온실가스는 일본 전체의 40% 이상이다. 일본 정부가 발전소 구성 계획을 전면 개편하는 이유다.

당초 계획은 2030년까지 화력발전 비중을 56%로 줄이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각각 20~22%, 22~24%로 늘리는 것이었다. 탈석탄화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은 2050년까지 화력발전과 원전 비중을 30~40%로 낮추는 대신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50~60%로 높이기로 했다.

나머지 10%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와 암모니아 발전으로 채울 방침이다. 도쿄전력홀딩스와 중부전력이 출자한 발전회사 제라(JERA)가 이미 천연가스에 수소나 암모니아를 섞어 연료로 쓰는 실험에 착수했다.

일본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약 20%를 차지하는 자동차업계도 과제가 많다. 2030년 판매되는 신차 가운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비중을 25%와 50%로 늘리면 일본 자동차 부품업계의 고용이 2만2000명 줄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와 연료전지차 비중을 100%로 높이면 고용은 20만 명, 부품사 매출은 30% 줄 것으로 분석된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차 부품이 휘발유차의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전체 근로자의 8%인 542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제철산업 역시 혁신이 시급한 업종으로 꼽힌다. 일본제철과 JFE스틸 등 대형 철강업체들은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전기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2100년을 목표로 했던 탈석탄화 시점을 50년 앞당기기 위해서다.

환경과학자인 아스카 쥬센 도후쿠대 교수는 탈석탄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 부문이 2050년까지 약 340조엔을 투자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치솟는 전기료 등 과제도 많아
전기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신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보다 생산비용이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는 일본이 관련 설비에 9조엔을 투자하고 원자력 및 화력발전소 비중을 18%로 유지해야 전기료 인상률을 30% 이내로 묶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전기료는 20% 이상 올랐다. 값싼 원전 비중을 30%에서 6%로 낮춘 영향이다. 탈석탄 사회에서는 자동차와 산업, 가정 등 모든 분야가 전기를 쓰기 때문에 전력 소비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유럽연합(EU)에선 전기요금이 최대 70% 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럽보다 신재생에너지 비용이 2배 이상 드는 일본은 전기료 상승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2조엔 규모의 기금을 설립해 신재생에너지 비용을 화석연료 수준으로 낮추는 기술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일본의 탈석탄화 전략 가운데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은 원전에 대한 접근법이다. 탈원전을 고수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 정부는 “온실가스를 0으로 줄이려면 2050년에도 원전은 필요불가결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탈석탄화 실행계획에 2050년까지 신형 소형 원자로를 도입한다는 목표도 포함시켰다. 기존 원전은 2070년이면 수명을 다한다. 일본 전력중앙연구소는 신재생에너지를 최대한 도입해도 대형 원전 30기가 필요하다고 예상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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