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세한에 되새기는 세한도의 가르침

입력 2020-12-27 18:40   수정 2020-12-28 00:19

올해 문화계에서 있었던 가장 감동적인 일을 꼽으라면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 선생(91)의 ‘세한도(歲寒圖)’ 기증이다. 손 선생은 2018년 추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등 서화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데 이어 마지막으로 소장하고 있던 국보 제180호 세한도까지 내놓았다.

기증을 계기로 지난 11월 개막한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평안’ 특별전에서였다. 추사 김정희 세한도와 단원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를 함께 보여주는 전시인데, 세한도를 한참 보고 나서도 좀처럼 발길을 옮길 수 없었다. 그림과 함께 추사가 제자 이상적을 위해 써놓은 글 때문이었다.
한겨울에도 푸른 송백처럼
‘지금 그대는 나에게 귀양 전이라고 더 해준 것이 없고, 귀양 이후라고 덜 해준 것이 없다.’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유배 중인 추사는 그게 특별히 고마웠다. 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청나라를 빈번히 왕래했다. 그때마다 책을 구해 스승에게 선물했다. 추사가 유배를 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이득이 될 권력자나 제자의 변함 없는 신의에 추사는 세한도로 고마움을 표했던 것이다.

시종여일(始終如一)하기 어려운 것이 세간의 인심이다. 그렇다고 해도 특별히 이 글귀가 마음을 붙든 것은 1년 내내, 아니 지난해의 조국 사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검찰개혁 논란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끄는 검찰은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수사했고, 현 정부와 관련된 인사들의 불법·비리 혐의도 수사해왔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피하지 않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막상 수사 대상이 된 ‘살아있는 권력’은 표변했다. 여일하기는커녕 정반대로 돌아섰다. ‘우리 총장님’은 징계하고 쫓아내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다.

법원의 결정, 국민 여론 등을 두루 감안하면 이제 달라질 법도 하건만 그럴 낌새는 없다. 일부 진보 지식인조차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지만 우이독경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최근 출간한 책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진보 진영의 독선과 오만을 질타했고,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 등 원로들의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바람이냐, 깃발이냐, 마음이냐
지루한 편가름의 싸움을 이어가는 동력은 ‘나만 옳다’는 자기중심주의다. 오죽하면 교수 900여 명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아시타비(我是他非)’일까.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거다. 이런 편싸움의 사이에서 괴로운 건 국민이다. 원로 진보 지식인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깨어 있고 상식이 있는 시민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진심으로 공감하는 지적이다. 무슨 개혁이든 이름만 ‘개혁’이어선 성공할 수 없다. 목표는 물론 과정과 절차가 민주적이고 공정해야 성공할 수 있음은 당연지사다. ‘아시타비’의 자세로 일관한다면 비극적 결과는 예약된 거나 다름없다. 답은 자기를 돌아보는 데 있다.

옛날 중국의 절에서 당간지주에 걸린 깃발이 바람에 움직이는 걸 보고 학인(공부하는 승려)들 간에 논쟁이 붙었다. “바람이 움직인다.”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거다.” 이를 지켜보던 더벅머리 형색의 육조 혜능이 일갈했다.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유명한 ‘풍번문답(風幡問答)’이다. 바람보다, 깃발보다 중요한 것이 자기 마음이다. 괴로워하는 시민들을 위해 부디 자기를 돌아보라.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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