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팀 만드는데, 함께 일해보자"…생존한 임원들 '에이스 영입' 전쟁 [김상무 & 이부장]

입력 2020-12-28 17:22   수정 2021-01-05 18:47


“사람이 전부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사람이라고요. 일을 하는 사람, 일을 만들 줄 아는 사람.”

몇 년 전 화제가 된 웹툰 ‘미생’이 남긴 숱한 명대사 중 하나다. 주요 인물인 오 차장이 회사를 차릴 때 완벽주의자로 소문난 사람을 영입하자는 자신의 제안에 동업자가 “너무 꼼꼼한 이”라며 주저하자 한 말이다. 신생 기업에서는 더 그렇겠지만 어느 회사든 본질적으로는 같다.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는지에 따라 성과는 달라지고, 성과는 때로 팀의 운명을 좌우한다.

정기 임원인사가 끝나고 자리를 잡은 김상무 이부장들이 숨 돌릴 새도 없이 ‘2차전’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부서원 확보 경쟁이다. 경쟁 업체와 옆 부서장을 막론하고 관리자라면 모두 경쟁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상당수 기업이 타격을 받은 상황. 그 어느 때보다 실적이 중요한 만큼 이들은 능력 있는 직원을 얻기 위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인재 두고 불붙은 경쟁
서울의 한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최 상무는 최근 최고경영자(CEO) 직속 신사업 부서를 총괄하게 됐다. 임원 인사가 났을 때 느꼈던 쾌감은 오래 못 갔다.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만, 판을 깔아줘도 실적을 못 내면 앞날이 불확실해질 자리였다. 그래서 발령 직후 그는 각 부서 ‘에이스’들을 모조리 데려왔다. 일 잘하는 직원들로 드림팀을 만들면 단기간에 성과가 날 거라는 계산이었다.

인재를 빼앗긴 부장들의 불만은 거셌다. 등 뒤에서 원망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누구 마음대로 직원을 데려가느냐”며 대놓고 언성을 높이는 사람도 있었다.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된 최 상무는 “성과를 못 내면 1년 만에 집에 갈 수도 있어 어쩔 수 없었다”면서도 “앞으로 다른 부서 협조가 잘될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최 상무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인사 때 원하는 직원만 데려올 수 있는 관리자는 드물다. 대부분은 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내주는 ‘딜’을 해야 한다. 국내 대기업의 김 부장은 인사철 전부터 후배 직원 A씨를 점찍어놨다. 그와 업무 스타일이 잘 맞았고 일도 잘했다. 하지만 인재는 누구나 알아보는 법. 여러 부서가 탐내는 A씨를 얻으려면 평판이 안 좋은 직원 B씨를 함께 데려가라는 게 인사팀의 최후통첩이다. 그는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성과를 내기 어려워 인재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고민”이라고 했다.

사내 에이스 경쟁이 그저 부러운 김상무 이부장도 있다. 코로나19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회사에선 부서마다 ‘우리 애들’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한 공연기획사 마케팅부를 이끄는 박 부장은 지난주 공연기획 부서 강 부장과 얼굴을 붉히며 설전을 벌였다. 공연 가뭄에 회사가 계약직 대부분을 내보내겠다고 선포한 게 발단이었다. 강 부장이 자기 부서를 지키기 위해 임원들에게 “마케팅부가 업무 대비 인력이 많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치밀었다. 박 부장은 “계약직 직원들도 몇 년간 함께하며 정이 들었다”며 “감원 대상이 되지 않게 해주고 싶은데 방법이 안 보인다”며 괴로워했다.
보상으로 직원 마음 얻어야
요즘 능력 있는 직원을 데려오려면 윗선의 허락과 인사팀의 동의 외에도 얻어야 하는 게 있다. 당사자의 마음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없는데 “불러주는 데로 간다”는 순종적인 마음가짐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김상무도 이부장도 이들이 응할 만한 ‘당근’을 줘야 한다.

국내 유통업체의 박 팀장은 이번에 신사업 부서를 맡게 됐다. 최근 떠오르는 라이브커머스 사업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비대면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며 주목받는 만큼 경영진의 관심도 크다. 문제는 직원들의 관심이 적다는 것. 친분 있는 후배들을 설득했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다들 회사의 기존 주력 부서인 오프라인·온라인몰 상품 기획에 계속 있고 싶다고 했다. 협력업체와의 네트워크 등 인프라가 갖춰져 안정적인 실적을 낼 수 있어서다. 과감한 도전을 하지 않는 후배들이 야속했지만 “맨땅에 헤딩하기 싫다”는 마음도 이해가 갔다. 그는 “신사업 부서에서는 직원 개인의 의지와 역량이 중요하다”며 “싫다는 사람들을 억지로 데려오기 싫었는데 지원자가 적어 시작부터 순탄치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관가에서는 줄 수 있는 당근이 더 적다. 공무원들은 행정고시 기수에 따라 승진 순서가 대부분 정해져 있다. 승진 여부를 좌우하는 근무성적평정(근평)을 기수 순으로 매기는 게 불문율이다. 후배 공무원들은 인사 적체가 심한 부서를 꺼릴 수밖에 없다. 정부 중앙부처의 A국장은 최근 다른 국 후배 직원에게 자신의 부서로 오라고 제안했다. 돌아온 말은 “제 근평은요?”였다. 기수가 높은 다른 직원이 있어 근평을 잘 줄 수 없을 것이란 의미였다. A국장은 “제대로 보상도 못 주면서 고생하는 자리에 오라고 한 게 겸연쩍어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경쟁사에 뺏기면 죽는다”
인재 영입 경쟁은 사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 잘하기로 소문이 난 직원은 여러 곳에서 이직 제안을 받는다. 경쟁 업체들의 ‘러브콜’에 맞서 똘똘한 직원들을 지켜내면서 외부에서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김상무 이부장의 역할이다.

한 시중은행에서 기획 파트를 담당하는 김 부장은 최근 눈독을 들이던 부부장급 직원 C씨에게 부서로 오라는 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했다. 이유를 들은 그는 충격을 받았다. C씨는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이직 제안을 받아 고민하고 있었다. 승진도 빠르고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인재였다. 회사의 기대도 컸다. 그런데도 지금보다 적은 연봉을 감수하고 인터넷전문은행을 선택하려 하고 있었다. 김 부장은 “내가 입사할 때는 그저 열심히 일해 빨리 승진하는 게 은행원의 덕목이었는데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에 있는 한 중소기업의 이 상무는 보름에 한 번꼴로 수도권의 공과대학 교수들을 찾아간다. 회사로부터 엔지니어를 충원하라는 특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회사는 교통인프라 부문에서 알려진 ‘알짜 기업’이다. 그런데 올초 젊은 엔지니어들이 대거 퇴사해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공채 및 경력직 채용도 쉽지 않다. 이 상무는 “교수님들에게 전공 지식이 있는 취업준비생들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고 다닌다”며 “젊은 직원들은 몇 년 다니다가 대기업 계열사로 이직하고, 경력직들은 연봉과 근무지를 까다롭게 따져 인재 충원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토로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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