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잃어버린 20년' 걱정하는 세밑 풍경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12-31 09:30  


올해 마지막 날이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는 날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뜻하지 않은 '침공' 때문이리라. 나랏일도 그렇고, 경제도 마찬가지다. '한국 경제호(號)'를 이끄는 기업인들에겐 이처럼 지나가는 한 해를 돌아볼 여유도 없다. '내년이 더 큰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새해를 맞는 경제단체장들의 신년사에서부터 이런 비장미가 느껴진다. 외환위기 발발 직후인 1998년 새해 때도 그랬나 싶을 정도다.

과거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이 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신년사에서 "내년은 우리 경제가 생사 기로에 서는 해"라며 "절박한 심정으로 산업구조를 혁신하지 않으면 잃어버린 10년, 20년이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절박함은 기업인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며, 기업 혼자의 힘만으로 이겨낼 수도 없다. 지금은 국민, 기업, 정부 모두가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대목에서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경고가 나라경제 전체를 끌어가는 관료들이나 국책연구기관들, 한국은행 등에서 먼저 나오지 않나 싶다. 왜 이런 걱정과 조바심이 정책 당국자에게선 느껴지지 않고, 일선 기업현장에서만 메아리치는 지 안타깝다.

손경식 경총 회장도 신년사에서 "기업 경영활동을 제약하는 법안이 무더기로 입법화됐다"며 "민간 경제주체의 창의와 혁신을 촉진하는 '시장자율 원칙'을 견고히 보장해 강력한 성장동력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말에 거대여당이 완력으로 밀어붙인 기업규제 3법이 기업계의 가장 큰 걱정거리라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실시한 50대그룹 설문조사에서도 '내년 가장 두려운 게 규제와 기업관련 법안'이란 응답이 61%를 차지했을 정도다.

이것뿐이겠는가. 친(親)노조 정책과 법령·제도 개정은 노조 쪽으로 기운 운동장을 더욱 기울게 했다. 일자리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는 거꾸로 '고용절벽'에 '청년실업'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5차 추경까지 동원하며 재정 투입을 늘리는 것 외에 제대로 된 위기극복의 경제 컨트롤타워가 보이지도, 확인하기도 힘든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나마 수출제조업이 버티고 있고,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실적이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내년이 더 가시밭길인 것은 확실하다. 목전의 위기 요소인 '백신 디바이드(격차)'가 당장 한국 경제를 집어삼킬 태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어제 코로나 백신 도입이 늦어지고 바이러스 확산세가 커질 경우 한국이 2년 연속 역(逆)성장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올해 -1.8% 성장이 내년에 골을 키울 수 있다는 경고다. 'K자 형태 성장' 예상에서 백신 확보에 성공한 선진 제조업 중심국은 탄탄한 성장궤도에 다시 진입할 수 있는 반면, 우리는 자칫 아래쪽으로 하락세를 보일 위험이 크다. 향후 각국 경제전망에서 한국의 회복 속도가 선진국(OECD) 중 가장 더딘 수준이 될 것이란 경고마저 나온 마당이다.

꼭 1년 전 국내 기업계의 신년 다짐과 비교해보면 기업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작년 초 경제 5단체장들의 신년사엔 규제완화, 투자·생산 증대를 위한 환경 조성 등을 통해 기업 활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허창수 회장과 김영주 무역협회 회장은 '혁신'을 여러 번 강조했고,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기업가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했다.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의 신년사에도 '고객' '성장' '미래' '혁신' '역량' '지속' 등이 많이 언급됐다. 지금과 비교하면 한결 여유가 느껴진다. 거시경제나 산업계 공동의 대응 과제 외에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란 경영과제에 집중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 여당의 역할과 책임은 명확하다. 기업 단위에서 일상적 과제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환경을 우호적으로 조성하는 게 급선무다. 군사작전 하듯이 이념으로 도배질한 법 제·개정을 밀어붙이는 행태를 계속하면 나라경제의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해지고, 심각한 장애만 유발할 것이다.

기업인들이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부분도 잘 살펴야 한다. 기업규제 3법에 이어 징벌 3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이 혹여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추후 마련할 하위 법령에서 기업의 활력을 꺾지 않는 세심한 규정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자칭 '개혁입법' 완수로 정권 기반을 튼튼히 다졌다고 만족해할지 몰라도, 그 사이 기업경쟁력과 안정적 지배구조에 수없이 뚫린 구멍 때문에 침몰하는 기업 현실을 못 본 체 해선 안 된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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