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떠난 '65세 청년' 서정진, 혈액 검사 스타트업 차린다

입력 2021-01-02 08:30   수정 2021-01-02 10:56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사진)이 지난해 12월31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국 바이오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이제 혈액 검사 스타트업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셀트리온에 따르면 서정진 회장은 별도 퇴임식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 체제에 돌입하기로 했다. 앞서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연말 은퇴의사를 공식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경영과 소유를 분리해야 한다. 은퇴하면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진 않을 것"이라며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서정진 회장은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 놓고 무보수직인 명예회장으로 추대될 예정이다.
실업자 위기 상황에서 발견한 'K-바이오' 미래
서정진 회장은 삼성전기에 입사해 직장 생활을 하다 한국생산성본부로 자리를 옮겨 대우자동차를 컨설팅했다. 이때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눈에 띄어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고문으로 영입됐다. 당시 국내 최고 대기업이던 대우에 스카웃돼 탄탄대로를 걸을 줄 알았지만 IMF 외환위기가 닥치고 대우 신화가 무너지면서 그는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그는 바이오산업이 유망할 것이라 내다보고 대우차 출신 동료 10여 명과 함께 2000년 인천 연수구청 벤처센터에서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바이오텍을 창업했다.

이듬해인 2001년 서정진 회장은 글로벌 바이오산업 중심지였던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루크 블럼버그 박사, 스탠퍼드대 에이즈연구소장이던 토마스 메리건 교수 등 생명공학 분야 석학들을 만나 대화한 뒤 바이오산업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본격 사업 확장에 나섰다. 2002년 2월 넥솔바이오텍과 미국 백스젠 합작법인으로 셀트리온을 설립했다. KT&G 등으로부터 자금 투자를 받아 당시 간척 사업이 진행 중이던 인천 송도에 9만2958㎡ 공장 부지도 매입했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성공 가능성은 2010년대 들어 빛을 발했다. 세계 최초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셀트리온이 차지했고 제품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셀트리온의 개발 생산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 등 바이오시밀러가 미국과 유럽에 진출했고, 제품당 수천억원 매출을 일으키며 셀트리온은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1조 클럽'에 가입했다.

셀트리온헬스케어 매출까지 포함하면 2조원이 넘는다. 최근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 3사의 합병까지 추진돼 조만간 국내 첫 '빅 파마(Big pharma)' 탄생도 예고했다.
"코로나 항체치료제 돈벌이용으로 사용할 생각 없어"
그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항체 치료제 개발 약속도 지켰다. 셀트리온은 개발 추진 10개월 만인 지난해 12월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렉키로나'의 조건부 허가심사를 신청했다. 미국과 유럽에 뒤처진 바이오·의약 분야에서 이뤄낸 성과다.

서정진 회장은 올해 글로벌바이오포럼에서 "투명하게 절차를 밟아 빠른 시간 안에 승인이 날 수 있다고 본다"며 "전 국민 진단검사를 추진해 숨어 있는 확진자를 찾아 조기에 치료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셀트리온의 렉키로나는 세계에서 3번째로 허가심사를 신청한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액에서 항체를 지속적으로 채취할 필요 없이 유전자 재조합된 세포를 이용해 중화항체를 대량 생산하는 게 포인트다.

셀트리온은 국내 조건부 허가 신청과 함께 이달 중 미국과 유럽에 긴급사용승인 신청도 진행할 계획이다. 국내의 경우 신속심사 기한 40일을 적용하면 1분기 내 조건부 허가가 예상된다.

서정진 회장은 "이 항체치료제는 일종의 공공재로 돈벌이용으로 사용할 생각이 없다"며 "이 겨울만 지나고 봄이 됐을 때 한국이 전 세계서 이 위기를 가장 잘 극복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스타트업 기업인으로 돌아가고 싶다"

셀트리온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서정진 회장이지만 업계를 떠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혈액 검사 회사를 만들어 스타트업 기업인으로 돌아가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서정진 회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2020 헬스케어이노베이션 포럼'에 참석해 은퇴 이후 계획에 대해 "올해 65세이고 앞으로 몇년을 더 일할지 모르겠지만 정신연령은 젊은이들과 같다"면서 "스타트업 기업인으로 다시 돌아가 피 검사에 몰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피 검사 분야를 특정한 것은 향후 헬스케어 혁신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분야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정진 회장은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고령화로 인해 헬스케어에선 이노베이션(혁신)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령화 추세는 의료 서비스 수요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짚은 뒤 "의사나 병원이 한정된 만큼 원격진료 쪽으로 갈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집에서 검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검사 중 가장 중요한 피 검사를 어르신이 직접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 검사 문제를 풀 수 있게 되면 대한민국에 전세계 70억명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게 되는 것"이라며 "이걸 하겠다는 건 저와 아마존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셀트리온 경영에서 물러난 서정진 회장의 향후 행보에 더욱 눈이 쏠리는 이유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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