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한경 신춘문예] "금융위기 속 靑春들의 분투기…인생에 정답이 있을까"

입력 2020-12-31 16:40   수정 2021-01-01 03:18


“저만 좋아했던 소설이란 친구가 이제야 제 손을 잡아줬네요. 이제서야 소설과 영원히 함께 갈 수 있는 친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2021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해를 묻은 오후’로 당선된 허남훈 씨(42)는 20년 넘게 시인을 꿈꿨던 문학도였다.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그의 마음엔 늘 ‘시인’이란 꿈이 있었다. 시인이 될 거란 상상은 많이 했지만 소설가가 될 거란 꿈은 꿔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한 문학상에 시로 최종심까지 올라갔지만 탈락하면서 내상을 입었다”며 “시라는 게 언어를 계속해서 깎는 작업이기에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황이 되는 걸 느끼며 절망을 반복했다”고 털어놨다.

그런 그에게 소설은 자유로움을 안겨줬다. “시와 정반대로 소설은 언어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더라고요. 시만 써온 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한편으론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소설 안에서 뛰어다니는 경험을 하며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걸 느꼈죠.”

허씨는 대학 시절 내내 심취했던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해 졸업 후 TV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여행’ 조연출부터 단편영화 감독까지 꿈꿔왔던 영화 일을 했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전공과 비슷한 듯 다른 방식의 글을 쓰는 기자를 택했다. 고향인 춘천의 강원일보에 입사해 4년간 문화부, 연예부, 인터넷뉴스부 등을 거쳤다. 짧은 기자 생활 속에서도 그는 문학인으로서 꿈을 놓지 않았다. 2010년 대학 동문들이 만든 독서모임에 2015년부터 참여해 시는 물론 자신이 쓴 단편소설까지 보여주며 꾸준히 참가자들과 합평을 해왔다. 이번 당선작은 2년 전 취재해 완성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이 이 모임에서 호평을 받자 용기를 내 2019년 10월부터 장편 분량으로 양을 늘려 지난해 3월 초고를 완성한 첫 장편소설이다.

허씨는 “직장을 옮길 때마다 ‘지금 이곳에서 행복한 게 맞나’ 하고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그때마다 글쓰기와 이야기의 중간에서 진짜 행복을 느끼게 한 존재가 소설 쓰기였다”고 말했다.

당선작 ‘해를 품은 오후’는 스포츠신문 연예부에서 적응에 실패한 뒤 CFP(국제공인재무설계사) 시험을 준비하며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하는 수영과 대학 졸업 후 6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수영의 친구 용수가 생계를 위해 노동현장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그중에서도 소설로 다뤄지긴 다소 생소한 ‘보험업’을 이야기 소재로 삼은 이유가 궁금했다.

“신문사 퇴사 후 보험업과 증권업 공부를 잠깐 하면서 다른 사회, 다른 직종이 가진 이면을 보게 됐어요. 소설은 2008년 금융위기를 앞둔 당시에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의 분투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마주한 사회의 모순에 대한 이야기예요. 특히 신문사 기자였던 수영이 보험사에 들어가 자신이 창간 작업에 참여했던 신문을 판촉물로 돌리면서 느낀 ‘사회적 낙차’를 흔히 다뤄지는 계급 문제가 아니라 손 댈 수 없는 한 시대의 모순적 풍경으로 보여주고 싶었죠.”

심사위원 사이에선 굳이 금융위기가 벌어졌던 2008~2009년을 왜 소설의 배경으로 잡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이에 대한 허씨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제임스 설터라는 소설가는 ‘우리가 글로 쓴 것은 우리와 함께 늙어가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금융위기 당시 청춘들이 고군분투했던 단면을 영원히 소설로 남기고 싶었어요. 시간적 배경은 2008년이지만 금융위기는 언제든 또 올 수 있고, 그때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팬데믹을 겪는 지금의 청춘들이나 삶의 위기란 측면에선 크게 다르지 않죠.”

20년 동안 오직 시만 써왔던 허씨에게 소설은 ‘행복을 느끼게 한 존재’였다. 그는 “40년 넘게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읽고 쓰는 삶 자체가 행복인 걸 알았고, 그즈음에 쓴 작품이 이번 당선작이었다”며 “이제야 독자를 만날 방법을 알았기에 행복감과 함께 막연한 책임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새내기 소설가로서 허씨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쓰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무겁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로 독자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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