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기초인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접할 기회가 부쩍 늘었다. 검찰과 여권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범여권에서 ‘선출된 권력’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거론하며 권력 간에 우위를 두거나 정당성에 차별을 두려는 모습이 자주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권력에도 ‘착한 권력’과 ‘나쁜 권력’이 있고, ‘우위에 있는 권력’과 ‘종속된 권력’을 구분해야 한다는 얘기처럼 들린다.범여권 인사들은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만 지고지선(至高至善)하며, 일반 행정공무원과 사법부 같은 ‘임명 권력’에 절대우위를 지닌 것인 양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선출 권력의 지시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임명 권력이 권한을 부당하게 남용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여과 없이 내비친다.
이처럼 위압적인 통제와 복속만 강조하는 강경한 주장들을 접하다 보면 ‘임명 권력’은 그저 ‘선출 권력’이 시키는 것만 수행해야 하는 존재인지 의문이 절로 든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검찰과 경찰의 행패는 형식적으로나마 선출된 권력의 수족으로 움직이면서 빚어진 것이 아니었나.
또 ‘선출 권력’의 말만 잘 들으면 국사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선거와 정치에 휘둘리지 말라고 임명직 공무원을 둔 것은 새까맣게 잊었는지, ‘늘공(늘 공무원)’이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눈치를 보며 위헌·위법 소지가 농후한 정책을 쏟아내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선출 권력의 절대우위를 주장하며 사법부를 윽박지르는 모습에선 모골이 송연해진다. 사법부가 ‘비(非)선출 권력’으로 구성된 연원을 고려할 때, 자칫 역사의 교훈을 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치기 힘들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투표에서 보듯 대중의 비합리적 선택은 잊을 만하면 반복되곤 한다. 민주주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안전장치들로 구성됐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사법부로 대표되는 ‘임명 권력’이 ‘선출 권력’의 지배하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매우 위험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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