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직장인들은 ‘격려’를 받는다. 국내 주요 기업이 전년 성과를 바탕으로 성과급을 지급한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중에 성과급 시즌이 찾아왔다. 상당수 직장인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실적이 악화한 기업이 많아서다.
하지만 올해도 성과급을 주는 기업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역대급 실적을 낸 대기업들은 성과를 직원들과 나누고 있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반도체사업부는 연봉의 44~46%, 무선사업부는 41~47%, 생활가전은 28~34% 수준의 성과급(OPI)을 지급한다. 바이오 금융 게임 등의 산업에 종사하는 임직원들도 예년을 웃도는 성과급을 받을 전망이다.
성과급이 남의 얘기인 사람도 많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호텔·문화전시·스프츠 업종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이들은 “가뜩이나 어려운데, 상대적 박탈감까지 겹쳐서 더 힘든 1월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성과급도 업종에 따라 희비가 크게 갈리는 요즘, 한국경제신문이 ‘보너스’에 얽힌 김과장 이대리의 사연과 애환을 들어봤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에 다니는 임 과장의 경우 작년 말까지 수수료 실적만 보면 성과급 예상 지급액이 한 해 연봉에 육박한다. 증권사들은 직원의 이직을 막기 위한 장치로 한 해 성과급을 3년간 나눠 지급한다. 지난달부터 일부 성과급이 지급되고 있다. 월급 통장엔 평소 월급의 약 3배가 입금됐다. 임 과장은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 좋다는 표현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에서 해외 대체투자 업무를 맡고 있는 김 대리도 성과급을 두둑하게 받는다. 우여곡절이 있었다. 코로나19로 해외 현장 실사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펀드 설정이 무산될 위기를 겪기도 했다.
김 대리는 현지 업체를 통한 ‘대리 실사’로 돌파구를 찾았다. 필요한 정보를 현지 업체를 통해 확보하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펀드를 운영해 수익을 냈다. 꼭 가야 하는 실사는 자가격리를 감수하고 다녀왔다. 지난해 이 펀드의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을 크게 웃돌았다. 회사는 김 대리의 노력을 높게 평가해 성과급을 예년보다 늘려 지급했다.
생활용품 제조사 마케팅팀에서 일하는 이 과장도 성과급을 받는다. 작년 초 시무식에서 회사 대표가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성과급 500%를 지급하겠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이 과장은 냉소적이었다. 입사해서 단 한 번도 500% 성과급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방역용품 수요가 늘자 이 회사 일감이 크게 증가했고 덕분에 매출은 목표를 크게 초과했다. 이 회사는 당초 목표보다 많은 700%의 성과급을 지급한다고 최근 공지했다.
항공사 지상직으로 근무하는 이모씨도 사정이 비슷하다. 해외 여객 항공편이 거의 끊긴 탓에 회사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30대 초반인 이씨는 계속 출근하고는 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동료 중에 명예퇴직하거나 휴직에 들어간 사람이 많다. 이씨 회사는 최근 임금을 동결하고 현행 단체협약을 유지하기로 노사 합의를 이뤘다. 이씨는 “다른 항공사에 비해 그나마 회사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성과급이 예년에 비해 줄었다고 불평하는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그냥 쓴웃음만 나온다”고 했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대형 게임회사에 다니는 차 과장은 게임사 실적이 좋아 성과급을 많이 준다는 말만 들으면 부아가 치민다. 차 과장이 속한 팀에서 내놓은 신작은 성과가 좋지 않아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는 “게임산업이 좋다 하니 신작이 너무 많이 출시돼 오히려 성과를 내기 더 어려워졌다”며 “다른 팀에서 성과급을 많이 받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커진다”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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