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인식 공항 출입국심사대 시장 100% 장악한 씨유박스

입력 2021-01-06 16:27   수정 2021-01-06 16:32


기록적인 장마가 이어지던 지난해 7월 얼굴인식 보안전문기업 씨유박스(CUBOX)의 남운성 사장(51)에게도 짙은 먹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국내 공항들이 자동출입국 심사대 발주 계획을 전면 취소하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하늘길이 막힌 공항이 사실상 셧다운 상태에 빠지자 예산 집행을 미룬 탓이었다.

매출액의 대부분을 안정적인 공공 발주물량에 의존하던 씨유박스로선 자칫 존립을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씨유박스는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접어들 것이란 판단에 매출 목표를 두 배 이상으로 올려잡고 연구개발(R&D) 인력 채용과 제품 양산을 위한 설비 확충에 나서고 있었다.

씨유박스는 최첨단 인공지능(AI) 기반의 알고리즘 기술력으로 국내 공공분야 얼굴인식 시스템 시장을 100% 장악한 업체다. 공항이나 항만 등 국내에 설치된 얼굴인식 출입국 심사대는 모두 씨유박스 제품이다. 독보적인 기술을 무기로 승승장구하고 있던 차에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 사태로 수주 모두 끊겨
남 사장은 당황했다. 말레이시아를 대상으로 2019년부터 준비했던 키오스크와 자동출입국심사대 수출 사업도 성사 단계에서 막혔다. 회사 창립이래 가장 큰 1200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 건이었다. 코로나19로 관심이 높아진 비대면 시스템이지만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해외 이동이 멈춘 상황에선 속수무책이었다.

문득 10년 전의 아픈 기억이 스쳤다. 교육용 소프트웨어 업체를 운영하다 성공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던 때다. 당시 한 유명 학습지 업체와 제휴를 맺고 안드로이드 태블릿 사업을 하면서 선투자를 단행했으나 막판에 상대 업체의 일방적인 사업 취소로 부도를 맞았다. 회사는 공중 분해되고 수억 원의 채무를 떠안은 채 한동안 신용불량자로 살았다. 차비가 없어 10㎞쯤은 걸어 다니기 일쑤였다. 그는 계약직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버텼다.

“가족을 생각하면 좌절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또 다시 고통을 겪도록 할 순 없었죠. 고민만 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무엇이든 부딪치고 사람을 만나다 보면 해결책이 나온다는 사실을 부도를 극복하면서 배웠죠.”

남 사장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곧바로 돌파구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일단 공항을 제외한 공공건물의 출입통제 시스템 등 비주력 분야 매출을 높이는데 드라이브를 걸었다. 수십억 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R&D 투자도 이어나갔다. 남 사장은 “어차피 글로벌 무대에서 승부를 걸려면 기술개발은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매출은 줄고 투자는 늘어나는 피 말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정부 연구개발 과제를 받아 40억 원을 지원받으면서 한숨을 돌렸다. 씨유박스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한 일부 기관투자가들도 힘을 보탰다.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
실패는 그에게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다. 그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대구에서 섬유사업을 크게 벌이던 부친의 회사가 도산했다. 승마와 바이올린을 배울 정도로 유복하게 살던 그는 졸지에 단칸방을 전전해야 했다. 검정고시로 겨우 고등학교를 마쳤다. 소프트웨어 개발 학원에서 배운 밑천으로 정보기술(IT) 사업에 투신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잇따른 실패의 산물이다.

기회는 2013년에 찾아왔다. 전산 서버 외주 관리업체였던 S사의 계약직 영업이사로 일할 때 인천국제공항으로부터 안면인식 자동출입국 심사대 개발 의뢰가 들어왔다. 정보통신(IT) 분야 대기업들이 제품을 개발해 납품했지만 오류가 잦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분야였다. S사에서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다양한 IT 장비의 기술개발 경험이 있던 그는 회사 측에 개발을 제안했다. 남 사장은 회사를 설립했고, S사는 아웃소싱이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그의 회사에 지분투자 방식을 통해 참여했다. 남 사장은 장비 개발에 뛰어든 지 1년이 채 안 돼 자동출입국 심사대를 제작해 납품했다.

성능을 인정받은 씨유박스는 이후 인천국제공항 터미널1·2는 물론 김포공항, 김해공항, 제주공항, 양양공항, 대구공항 등 국내 모든 공항과 인천항, 부산항. 평택항 등 국내 대다수의 항만에 자동출입국 심사대를 설치했다. 씨유박스의 기술력이 쌓이면서 2세종청사를 비롯해 과천, 서울, 대전청사 등 정부 4대 청사에도 얼굴인식 시스템을 설치했다. 초기 얼굴인식 알고리즘은 외국산을 사용했지만 2019년부터 독자 기술화에 성공해 자립했다. 그해 한·아세안정상회의에도 얼굴인식 시스템을 설치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얼굴인식 적용 분야 크게 늘 것”
씨유박스는 올해 재도약의 꿈에 부풀어 있다. 지난해 말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안면인식 테스트(FRVT)에서 글로벌 24위에 오르는 성과를 얻었다. 네이버, 카카오, 알체라 등도 참여한 테스트에서 국내 기업들 가운데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씨유박스는 공항의 얼굴인식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면서 쌓은 방대한 데이터 처리기술에 AI 기술을 접목했다. 이 결과 사람이 육안으로 얼굴을 인식하는 정확도(94.9%)보다 높은 99.8%의 인식률을 자랑한다. 남 사장은 “개인정보 취급이 자유로운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 출신이 아닌 기업 가운데 씨유박스의 성적은 최상위권”이라며 “올해엔 글로벌 10위권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비대면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얼굴인식 기술의 활용범위가 갈수록 넓어지고 있는 점도 호재다. 씨유박스는 지난해 폐지된 공인인증서 제도를 대체할 얼굴인식 인증 사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 있다. 비대면 본인인증에 활용되는 사설 인증 수단인 DID(분산신원인증), 재택근무에 많이 쓰이는 VDI(데스크톱 가상화) 솔류션 등도 코로나19 확산으로 폭발적인 성장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대기업과는 사옥의 출입관리 시스템을 얼굴인식 방식으로 교체하기 위한 업무제휴도 진행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도 아파트 단지에 얼굴인식을 통한 출입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 씨유박스와 접촉 중이다. 남 사장은 “흔히 사용하는 카드접촉이나 지문인식 방식보다 간편하고 보안도 뛰어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공항들도 사용 연한이 만료된 자동출입국 심사대의 전면 교체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씨유박스는 차세대 시스템으로 꼽히는 ‘원아이디(One-ID)’ 솔루션 개발도 마친 상태다. 여권과 본인의 얼굴을 최초 한번 등록해 공항 내 여러 절차를 단축하는 기술이다. 공항 자동출입국심사대 시장은 지난해 2억6000만 달러에서 원아이디 시장의 가세로 2023년엔 4억7000만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남 사장은 “인공지능 얼굴인식 기반을 발판으로 기업가치가 1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가파른 성장세 예상되는 얼굴인식 시장
안면인식 기술은 생태인증 수단으로 주로 활용된다. 눈썹의 간격, 얼굴 뼈의 돌출 정도 등 얼굴에서 60여 곳을 분석해 본인인증을 하는 방식이다. 최근 인공지능(AI)을 통한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면서 인식 수준도 크게 개선되고 있다. 안면인식은 지문인식 등의 생체인증 수단과 달리 비접촉식인 데다 동시에 다수의 인원을 판별할 수 있다. 모방, 복제, 위조 등이 쉽지 않고 도난, 분실의 염려가 없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비접촉 문화가 확산되면서 국내외 인증 시장에서 안면인식에 대한 관심은 크게 높아지는 추세다. 출입관리, 행정 보안 등은 물론 쇼핑, 결제, 금융, 의료복지 등 인증이 필요한 다양한 민간 영역으로도 적용 범위가 확산되는 추세다. 사무실, 공장, 학교 등 생활영역 전반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 대중화될 전망이다. 신분증 등을 소지할 필요가 없는, 이른바 ‘얼굴이 명함’인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DB금융투자에 따르면 글로벌 안면인식 시장 규모는 2015년 1억5000만 달러에서 2024년 8억8000만 달러로 연평균 22%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별로는 아시아·태평양이 가장 큰 시장이다. 이어 유럽, 북미 순이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사생활 침해, 개인정보보호 등의 우려로 안면인식 시장 확대가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다.

반면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따라 안면인식 기업들이 대량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실증 테스트를 거치면서 역량을 쌓고 있다. 중국의 안면인식 산업은 지난해 43억 위안 규모였으나 내년엔 약 67억 위안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범죄수사와 금융,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 안면인식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2014년 설립된 중국의 안면인식 스타트업 ‘센스타임’은 1초에 수십만 명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안면인식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가치는 95억 달러에 달한다. 싱가포르도 국가 차원에서 얼굴로 개인 신원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시험운영하고 있다.

국내 안면인식 기술은 주로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의 인증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분야에서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유통, 헬스 케어, 핀테크, 출입관리 등 다양한 신규 서비스가 출시되고 있다.

이정선 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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