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美 텍사스가 기업 성지로 뜨는 이유

입력 2021-01-08 13:57   수정 2021-01-09 00:04

1위 오스틴, 2위 댈러스. 미국 남부 선밸리에 있는 텍사스주 도시들이 실리콘밸리, 뉴욕 등을 제치고 2년 연속 ‘최고의 기술 도시(tech town)’로 꼽혔다. 비영리 기관인 미 컴퓨팅기술산업협회(콤프시아)가 지난해 말 발표한 조사 결과다. 협회는 2019년 8월부터 작년 7월까지 인구 25만 명 이상의 대도시를 대상으로 기술, 인력, 환경 등을 두루 조사했다.

협회는 “오스틴에는 5500개 이상의 정보기술(IT)기업과 스타트업이 밀집해 있다”며 “이곳에서만 앞으로 5년간 질 좋은 IT 일자리가 16%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지역의 기술직 연봉은 미국 최상위권인 평균 8만7880달러에 이른다.

요즘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실리콘힐스(Silicon Hills)’다. 오스틴의 서부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종전까지 창업의 성지로 꼽혔던 실리콘밸리에서 짐을 싸 텍사스로 이전하는 기업이 줄을 잇고 있다.

2015년 휴렛팩커드에서 분사한 HPE는 작년 12월 본사를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에서 텍사스 휴스턴으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1938년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실리콘밸리가 시작됐던 만큼 HPE의 본사 이전은 ‘테크 엑소더스’(연쇄적인 IT기업 탈출)의 상징적 사건으로 화제가 됐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인 오라클도 본사를 오스틴으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그 직후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트위터에 “텍사스는 기업, 일자리 그리고 기회의 땅”이라고 선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5년 동안 캘리포니아에 거주해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파일공유 소프트웨어업체 드롭박스의 드루 휴스턴 CEO도 최근 텍사스로 이사했다.

실리콘힐스엔 이미 IBM, 페이팔, 델, AMD 등 굴지의 IT기업들이 대규모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상당수는 ‘제2의 본사’다. 애플은 10억달러를 들여 7000여 명이 근무할 수 있는 별도 캠퍼스를 짓고 있다. 내년 입주할 예정이다. 추후 상주 인력을 1만5000여 명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테슬라도 전기자동차 생산공장인 ‘기가 팩토리’를 건설 중이다.

텍사스가 기업들의 성지로 뜬 이유는 일관된 친(親)기업 정책 덕분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텍사스엔 기업 유치에 발벗고 나서는 전통이 있다. 법인세 등을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낮게 책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텍사스는 주 차원의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최고 1%의 영업세(franchise tax)만 물릴 뿐이다. 물론 모든 주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연방정부 법인세(21%)는 별도다. 세금을 적게 거두는 대신 기업을 더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목표다.

개인소득세도 없다. 부유층의 낙수효과를 기대해서다. 세계 최고 부자인 머스크가 텍사스로 거주지를 옮기기로 결정한 것도 소득세 때문이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텍사스의 무(無)세금 정책은 8.84%(주 법인세)~13.3%(소득세)로 미국 내 최고 수준인 캘리포니아와 대조적이다.

텍사스는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 양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주도인 오스틴에만 명문 UT오스틴(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등 25개 종합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 경제 활동 인구의 47%가 대졸자다.

각종 공과금과 집세 등 생활물가 역시 낮은 편이다. 원유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땅이 넓은 덕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엔 원격 근무가 일반화하면서 경제 활동을 하기 편한 텍사스의 유인 효과가 커졌다는 게 상당수 기업 및 기업인의 반응이다. 벤처캐피털 아토믹 설립자인 JD 로스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텍사스주, 그중에서도 오스틴에선 모든 게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며 “공항 게이트 역시 매년 추가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텍사스의 기업 유치 전략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최고의 복지 주체이자 사회 안전망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부상하는 실리콘힐스가 될 수도, 추락하는 실리콘밸리가 될 수도 있다.
기업 유치하니 인구 늘고 임금 상승 선순환
1년 내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미국 텍사스. 척박했던 이곳에 기업이 몰리자 인구 역시 늘고 있다. 유입 인구는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선순환을 낳고 있다.

미 연방정부 통계국에 따르면 2010년 이후 7년 동안 텍사스의 순유입 인구는 86만7000명으로 나타났다. 50개 주 가운데 단연 1위다. 은퇴자들이 선호하는 플로리다도 제쳤다. 같은 기간 뉴욕(-84만7000명), 일리노이(-54만 명) 등에선 수십만 명이 빠져나갔다. 텍사스주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고용률, 재정 건전성은 전국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텍사스 내 컨설팅업체인 와이텍사스의 에드 커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캘리포니아와 달리 텍사스에선 기업 규제 때문에 논란이 빚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며 “최근 추세를 볼 때 올해 텍사스로 옮겨오는 국내외 기업들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제 규모만 놓고 보면 텍사스는 한국과 비슷하다. 2019년 기준 GDP가 1조8870억달러로 한국(1조6463억달러)보다 조금 많다. 인구는 한국(5182만 명)의 57% 수준인 2937만 명이다. 하지만 2017년 이후 경제성장률은 2.7~5.2%로 한국(2.0~3.2%)을 3년 연속 큰 차이로 따돌렸다.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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