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풀어본 주거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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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1-09 11:01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풀어본 주거복지


주인공은 여섯 살 말괄량이 소녀 무니. 미국 디즈니월드 인근 모텔인 ‘매직캐슬’에서 엄마 헬리
와 둘이 산다. 모녀는 1주일치 방세도 제때 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매직캐슬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무니는 늘 씩씩하게 동네를 휘젓는다. 무니에게 매직캐슬과 동네 뒷골목은 디즈니월드 못지않게 즐거운 놀이터다. 단짝 친구 잰시와 누구보다 마음이 잘 맞는 엄마 헬리만 있다면 무니는 무서울 게 없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맹랑한 꼬마 무니가 매직캐슬에서 벌이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담아낸 영화다.
매직캐슬 꼬마대장 무니
“여기 사는 아저씨는 맨날 맥주 마셔. 이 방 아줌마는 병에 걸려서 발이 엄청 부었어. 여기 아저씨는 가끔 체포돼.” 영화 초반 무니는 옆 모텔에 막 이사온 또래 친구 잰시에게 매직캐슬 사람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환한 연보라색으로 색칠한 화사한 모텔. 하지만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사정은 그리 밝지만 않다. 보증금으로 낼 목돈이 없는 이들이 주 단위로 방세를 지불하며 거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무니처럼 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인구가 39만 가구(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그래프<1>)가량 된다. 대부분 고시원이나 모텔에 거주하는 주거
취약계층이다.

반면 매직캐슬 맞은편엔 디즈니월드 관광객들을 위한 리조트와 고가주택이 늘어서 있다. 엄마 헬리는 이곳 사람들에게 가짜 향수를 팔면서 생활비를 번다. 이렇게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주거지역이 분리되는 것을 ‘주거분리’ 현상이라고 한다. 통상 고가주택 지역은 꾸준히 보수가 이뤄지면서 높은 가격을 유지한다. 반대로 저가주택은 수리를 못해 쇠락하면서 주거분리가 고착화하는 경우가 많다

저가주택이 재건축·재개발을 거치면서 고가주택으로 탈바꿈하는 사례도 있다. 이를 ‘상향여과(필터링 업)’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 속 매직캐슬은 상향여과를 누리지 못한다. 외벽에 핀 곰팡이를 가리기 위해 밝은 색 페인트로 여러 번 덧칠할 뿐이다. 매일같이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관리인을 향해 동료는 묻는다. “사장이 해충 해결할 돈은 없대요?”
주거복지의 작동원리
헬리와 무니 같은 사람들은 왜 매직캐슬로 모여들까. 이런 일종의 불량주택촌은 주택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거주자들의 낮은 소득 영향이 크다. 그래서 정부는 주거 취약계층의 실질소득을 높여주기 위해 빈곤 완화 정책을 편다. 일정 소득 이하 가구에 지급하는 ‘주거급여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임대료나 집수리 비용을 지원하는 현금성 복지정책을 ‘현금보조’라고 한다. 전세자금대출 같은 임대료 융자사업도 현금보조 중 하나다.

하지만 현금보조는 임대료 인상이라는 ‘풍선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정부가 임대료를 지원한 만큼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려 지원 효과가 줄어드는 식이다. 한국도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서울 쪽방촌 한달 임대료 평균액은 주거급여 액수와 1000원 단위까지 일치했다. 정부가 주거급여를 인상하자 건물주들 역시 월세를 올렸다. 임대료 상한제를 통해 일부 막을 수는 있지만 정부의 직접적인 가격 규제는 전·월세 공급을 위축시키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현금보조와 달리 실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지급하는 ‘현물보조’도 있다. 대표적인 게 공공임대주택이다. 다만 현물보조는 현금보조에 비해 형평성을 달성하기 어렵다.

무니의 낙 중 하나인 라즈베리 빵을 나눠주는 푸드뱅크 역시 식품 현물보조의 일종이다. 현금보조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현물보조가 비효율적인 데다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매직캐슬 주인이 모텔 앞에 주차한 푸드뱅크 트럭을 보고 “남들 보기에 좀 그렇다”며 불만을 표하는 게 이 같은 인식을 대변한다.
위기에 빠진 헬리
“이번주 방세 아직 못 받았어요.” “몰라서 안 줬겠어요?” 또 방세가 밀린 엄마 헬리는 초조해진다. 주거 보조금을 받기 위해 복지센터를 찾지만 필요한 근로시간을 채우지 못했다며 거절당한다. “헬리, 미안하지만 보조금 못 줘요. 제발 주 3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을 찾아봐요.”

빈곤 완화 정책의 대표적 부작용 중 하나는 수혜자의 근로 의욕을 꺾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최저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월 100만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정부가 100만원을 맞춰 보조해준다면 이 금액 아래로 돈을 벌던 사람들은 일할 마음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1만원을 더 벌면 정부 보조금이 1만원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게 ‘근로연계 복지’다. 헬리처럼 근로능력이 있다고 인정될 경우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액수를 삭감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저소득 근로자에게 세금환급 형태로 지원하는 근로장려세제(EITC), 근로 기회를 알선하는 자활사업도 있다. 수혜자의 근로 의욕을 북돋고 경제적 자립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반면 근로연계 복지가 질 낮은 일자리로 빈곤층을 몰아넣는다는 비판도 있다. 주거 보조금을 받는 데 실패한 헬리는 항변하듯 외친다. “이 빌어먹을 동네 쥐잡듯 다 뒤졌는데 아무데서도 나 안 써준다고요.”
아이가 달려간 곳엔…
이후 헬리의 상황은 더 꼬인다. 고급 리조트에 들어가 가짜 향수를 팔다가 관리인에게 들켜 쫓겨난다. 여기에 무니까지 사고를 친다. 버려진 펜션 단지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큰불을 냈다.

낭떠러지에 몰린 헬리의 선택은 한 장에 400달러(약 44만원)에 달하는 디즈니월드 입장권을 훔쳐 암표로 되파는 것. 갑자기 생긴 여윳돈에 모녀는 잠깐의 행복을 누리지만 신고를 받은 아동정책국 직원들이 곧 매직캐슬에 들이닥친다. 직원들 눈에 범죄를 통해 생계를 이어간 헬리는 엄마 자격이 없다. 아동정책국은 무니를 헬리로부터 격리해 위탁가정에 맡기겠다고 통보한다. 위탁이 뭔지도 모르는 무니는 그저 엄마와 떨어지는 게 속상할 뿐이다. “안 갈 거예요. 엄마랑 잰시랑 여기에 있을 거예요.”

이 장면에서 관객들의 심경은 복잡해진다. 모녀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모텔에서 삶을 이어가는 것보다 안정된 가정에 위탁되는 게 현실적으로 무니의 미래에 나을 것이란 사실을 안다. 하지만 헬리는 서툴고 무능력한 엄마였을지언정 무니에게 결코 나쁜 엄마는 아니었다. 헬리가 아동정책국 직원을 향해 할 수 있는 일은 “내 새끼 뺏어가지 말라”는 절규일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아동정책국 직원을 피해 도망친 무니가 매직캐슬 건너편 디즈니월드로 무작정 달음박질치는 모습이다. 친구 잰시의 손에 이끌린 무니는 디즈니월드 근처에 살았지만 그동안 가볼 꿈도 꾸지 못했던 그곳에 판타지처럼 당도한다. 영화는 무니 앞에 환상 같은 ‘꿈의 궁전’을 보여주며 위로를 선사한다. 낭떠러지에 놓인 사람의 허리에 생명끈을 묶어줄 방법이 있다면 무니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란 작은 낙관을 전한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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