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對北정책, 100m경주 아닌 마라톤이어야

입력 2021-01-10 18:19   수정 2021-01-11 00:17

조용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말문을 열었다. 8차 당(黨)대회 사업 보고에서였다. 변화의 목소리는 없었다. 주체와 자력갱생, 핵무력, 대미·대남 비난이 봇물 터지듯 넘쳐흘렀다. 벌써 3년 전 일이다.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 대화하고 “김 위원장이 비핵화 결단을 내렸으니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돌고 돌아 제자리다.

북한 경제는 대외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핵무기 개발에 따른 대북 제재 영향 때문이다. 석탄, 철광석, 수산물 등의 수출 금지, 신규 합작사업 금지, 원유 및 정제유 수입 통제 등 거의 모든 무역거래가 불법화된 상황이다. 하지만 당대회에서 던진 김정은의 지시는 ‘우리끼리’다. ‘주체’를 강조하며 분야별 생산량 극대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마른 수건을 비틀어 짜는 일이다.

김정은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언급하며 행정부가 바뀌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책임 있는 핵강국’이라고 주장했다. 핵능력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는지 다탄두 탄도미사일, 핵잠수함 그리고 초음속 미사일의 개발 단계도 상세히 설명했다. 사실 장거리 미사일 재진입 기술도 입증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과장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적어도 이들 무기체계를 시험하기 위한 전략 도발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시사한다.

곧 출범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당장 북한 문제에 높은 우선순위를 둘 수 없는 입장이다. 미국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크고, 지난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국내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일이 북한 문제보다 급선무일 수밖에 없다. 이에 북한이 몸값을 올리기 위해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하는 긴장의 순간이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3월과 8월의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4월의 김일성 생일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이를 잘 알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임명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가능성도 점쳐지는데 아무튼 그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협상이 재개된다 해도 과연 북한이 비핵화 대화를 수용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결국 자신들의 핵을 인정하고 ‘핵 군축 협상’을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핵 프로그램의 일부를 포기하고, 핵잠수함 건조를 중단할 테니, 이미 만들어 놓은 핵의 일부는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 대가로 연합군사훈련을 완전히 중단하고, 전략자산을 반입하지 않으며,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수용할 미 행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화가 재개돼도 협상 타결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국에 대한 북한의 메시지는 ‘입 닫고 조용히 북한이 시키는 일이나 하라’는 것이다. 중재자 역할을 희망하는 우리 정부에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역할을 잘하면 대화도 재개하고 한국 정부에 겉으로는 남북한 관계 개선처럼 보이는 대화라는 선물을 줄 수 있다는 암시도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북한과의 대화에 목마른 정부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은 왜일까.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정부의 강박관념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남북 관계는 탈(脫)냉전 이후 역대 정부마다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초기에는 대결 구도, 중기에는 대화 시도, 말기에는 다시 대화의 문이 닫혔다. 우리의 5년 단임제를 북한이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임기 내 성과에 급급해 표현의 자유와 같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나 핵 위협과 같은 생존권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북 관계의 역사 속에서 정부 역할은 100m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임기 내 승리의 트로피를 쟁취하려 들면 안 된다. 이용만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정부에 유리한 전략 상황을 물려준다는 생각을 해야 북한과 같은 장기 집권체제를 상대할 수 있다. 남북 관계는 장거리 이어달리기 마라톤이라는 생각을 해야 지속 가능한 대북정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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