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바도 우리 민족이었어'…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임락근의 식스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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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1-11 09:51   수정 2021-01-13 13:17

'소바도 우리 민족이었어'…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임락근의 식스센스]



오늘의 주제는 메밀입니다. 메밀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메밀은 대표적인 구황작물입니다. 구황작물이 뭐냐? 불순한 기상조건, 척박한 환경에서도 상당한 수확을 얻을 수 있어 흉년이 들 때 큰 도움이 되는 작물을 뜻합니다. ‘구원할 구(救)’에 ‘거칠 황(荒’)을 쓰는 이름에서도 그 뜻을 알 수 있죠. 메밀뿐만 아니라 감자, 고구마가 이에 해당합니다.

지금이야 밀가루가 흔해졌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산지가 많은 지형 특성상 재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진(眞)가루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귀했죠. 반면에 메밀은 상대적으로 재배하기 쉬워 서민들이 널리 먹었습니다.



메밀로 만든 음식 중엔 메밀 국수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음식디미방>, <주방문> 같은 조선시대 조리서를 보면 메밀국수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요.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그냥 ‘면(麵)’이라 불렸습니다. 그만큼 메밀국수가 널리 먹던 음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광복 이후 미국의 식량원조로 밀가루가 흔해지기 전에는 이 메밀국수가 주식이었던 거죠.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책 <백년식사>에 나오는 조선 후기 조선주재 미 공사관 해군 무관으로 근무했던 ‘조지 클레이턴 포크’에 대한 기록을 보면 흥미롭습니다. 포크는 민영익이 보빙사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통역을 담당했던 인물이기도 한데요. 조선에 발령을 받은 뒤 전국 곳곳을 여행하는 그는 전주에 들려 김성근 전라도 관찰사와 식사한 것에 대해 메모를 남겼습니다. 이 메모를 보면 메뉴에 ‘베르미첼리’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베르미첼리는 이탈리아 파스타의 일종입니다. 당연히 1800년대에 전주에서 파스타를 내왔을 리는 없겠죠. 이는 국수에 대한 묘사인듯 보입니다. 당시엔 메밀면에 여러 가지 채소와 배·밤, 쇠고기·돼지고기 편육, 기름장, 간장을 넣어 비벼 먹는 골동면이란 음식이 있었는데요. 포크 역시 이 요리를 먹은 것 같습니다. 이는 메밀국수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조선의 대표 음식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죠.



메밀로 만든 또다른 요리로는 냉면이 있습니다. 냉면과 메밀국수의 차이점은 뭘까요? 과거 기록을 보면 냉면과 메밀국수의 경계선은 흐릿했습니다. 조선 후기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유행한 냉면은 겨울에 먹는 메밀국수였습니다. 여름에 파종해서 늦가을에 수확한 메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반죽한 뒤 국수틀에 내린 뒤 시원한 국물을 부어 먹는 요리였죠. 19세기 조선 후기의 문인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는 메밀국수를 무절임이나 배추절임에 말고, 돼지고기를 넣은 것이라 냉면을 묘사했습니다.

겨울 음식이었던 냉면을 여름에 먹게 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략 얼음 보관 기술이 발달한 일제시대부터였다고 하는데요. 주영하 교수는 “겨울에 한강의 얼음을 채취해 보관했다가 여름에 아이스크림, 빙수, 냉면 재료로 파는 냉동주식회사가 생겼고, 그게 겨울 음식이었던 냉면이 ‘여름 음식’이 된 결정적인 계기”라고 설명합니다. 메밀이 나지 않는 여름에 냉면이 인기를 끌자, 면에 고구마나 감자 전분을 섞게 된 것도 냉면 보급에 기여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막국수는 어떤 종류의 음식일까요? 막국수 역시 메밀국수에 포함됩니다. 막국수는 ‘막’ 만든 국수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메밀 껍질을 까서 속 열매를 갈아 만든 메밀가루로 만들었기 때문에 식감이 거칠었기 때문에 막국수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메밀로 유명한 지역은 강원도입니다. 왤까요? 가난했기 때문이죠. 강원도는 산지가 많고 땅이 척박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농작물 재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옛부터 메밀이 흔했습니다. 소설가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 꽃 필 무렵>의 배경 역시 강원도 평창이었죠.

그런데 사실 제주도 역시 메밀로 유명합니다. 통계청의 '농작물생산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메밀 생산량은 총 2705톤입니다. 이 중 제주도가 974톤으로 가장 많았고, 경북 972톤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175톤의 강원도였습니다. 즉, 제주도는 강원도보다 5배 이상 메밀을 많이 생산했죠. 제주도 역시 땅이 척박했기에 메밀의 역사가 깊습니다. 예로부터 벼가 생산되지 않았던 화산섬 제주의 유일한 식량은 보리와 메밀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선 “아이를 낳으면 메밀로 만든 수제비인 메밀 조베기를 먹고, 사람이 죽으면 메밀로 만든 떡인 돌래떡을 넣어 장례를 치른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메밀은 제주도 사람들에겐 생사를 함께해 온 음식이었습니다.

좋은 메밀의 기준은 뭘까요? 메밀도 쌀과 같이 막 수확한 것들이 맛이 좋다고 합니다. 햇메밀이 나오는 늦가을이 가장 좋은 시기죠. 옛부터 메밀국수가 겨울음식이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메밀은 국산이 반드시 좋을까요?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메밀은 대략 연간 5000톤가량입니다. 이 가운데 절반은 수입산입니다. 주로 중국에서 수입해 옵니다. '농림수산식품 수출입동향 및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메밀 수입량은 2017톤이었는데, 이 중 대부분은 중국에서 수입한 메밀입니다.



수입산이라고 반드시 나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메밀은 중국에서 전해졌다고 알려진 만큼 중국산 메밀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소바’를 즐겨먹는 옆나라 일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메밀에 까다로운 취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소비되는 메밀의 70~80%가 중국에서 수입된다고 합니다.

일본의 닛케이신문의 2020년 11월 20일자 기사를 보면 중국산 메밀의 가격이 홋카이도산 메밀의 가격에 거의 근접했다면서 ‘메밀의 주요 산지인 중국 내몽고자치구 동부의 농민들이 메밀보다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조나 수수를 재배하면서 메밀 생산량이 줄어든 탓’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죠. 그만큼 중국산 메밀은 일본에서의 영향력이 큰 겁니다.

네 오늘은 메밀과 관련된 얘기를 해봤는데요. 알고 보면 한국 역시 밀가루 면보단 메밀국수와 인연이 깊은 역사를 갖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기획 한국경제 총괄 조성근 디지털라이브부장
진행 임락근 기자 촬영 고원일 PD, 김인별 PD 편집 고원일 PD
제작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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