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인사이트] 바이든, 지재권·인권 무기로 '中 때리기' 이어간다

입력 2021-01-12 17:33   수정 2021-01-13 01:00

‘이간(離間)의 계’. 지난해 12월 30일 유럽연합(EU)과 중국이 포괄적인 투자 협정 체결에 합의한 것을 두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한 비유다. 이간의 계는 삼국지에서 조조가 주로 활용하던 전략이다. 중국이 EU가 미국의 우호국인 점을 감안해 시장 문호를 연 것이라는 설명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중국의 외교적 쿠데타라고 표현했다. 중국이 7년 동안 끌어오다 갑자기 성사시킨 합의인 만큼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하다. 협정이 발효되기까지 시간이 남았지만 통신과 금융, 전기차 분야에서 유럽 기업들은 이제 중국에서 직접 영업할 수 있게 됐다. 대중국 수출에 걸림돌이었던 강제 기술이전과 같은 규제도 사라질 전망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EU가 중국을 통제하는 대아시아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던 터다.

독일로선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 미국 제재로 인해 제대로 수출하지 못하는 상품이 하나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이 급하다. 미국은 지난해 5월부터 화웨이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출을 막았다. 반도체 관련 지식재산권을 미국 기업이 소유해 꼼짝 못 하는 상황이다. 미 정부가 미국 기업들에는 중국에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는 틈새를 준 반면 EU 기업들은 막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도 들린다. 스위스 기업인 ST마이크로는 2년 동안 중국 수출 제재로 매출 목표를 거의 달성하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美 여론, 중국 불신 급증
중국은 아시아 기업에는 다른 전술을 구사한다. 중국은 지난 9일 미국의 중국 제재를 따르는 기업에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법을 마련했다. 미국 제재에 맞춰 화웨이 등 중국 기업에 부품 소재 등을 건네지 않으면 중국 기업이 이들에 직접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배상에 응하지 않으면 중국 법원이 강제 집행에 나설 수 있다. 당장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표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조 바이든 미국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연이어 터져 나오는 중국의 견제구다. 중국의 자신감이 읽히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다급함이 엿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4년 동안 미·중 간 마찰은 글로벌 무역을 줄이고 공급망을 교란시키는 등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다. 모리 사토루 일본 호세이대 교수는 미국이 대국으로서 중국을 대접하는 접근 방식은 사라지고 상호주의만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미·중 충돌로 인해 사람과 비용, 리스크를 감수하는 분위기가 미국 내에 생겼다고도 전한다. 미·중 간 경쟁 노선이 가속화돼 군사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안전을 보장하는 법안을 만드는 데 의회가 초당파적 합의를 이뤄냈다고도 한다. 트럼프가 만든 풍경들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인들의 반중 감정은 날로 높아져 갔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최근 중국인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73%(2020년 기준)에 달했다. 3년 전(47%)보다 26%포인트 높은 통계다. 의회와 여론을 존중하는 바이든으로선 중국과 협력하는 게 힘든 과제로 비춰진다.

바이든은 아직 대중 관련 정책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동맹의 단결을 중시하고 인권을 강조한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신장위구르인을 노동교화소에 수감한 폭력배’라고 평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고의 중국 전략은 우리의 모든 동맹국을 같은 페이지에 담아두는 것”이라며 “대통령 임기 첫 몇 주 동안 동맹국들과 함께 일을 해 나가도록 틀을 짜는 게 우선 과제”라고 했다. 그의 협력적 경쟁이란 표현도 이런 차원에서 읽힌다.

바이든은 또 트럼프는 대중 무역 적자에 무역전쟁의 초점을 맞췄지만 자신은 “지식재산권 도용과 제품 덤핑, 기업에 대한 불법 보조금 지급,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강요하는 중국의 협박을 들춰내는 무역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지식재산권의 가치를 알고 이를 무기화할 수 있는 정치가이기도 하다.
디지털 무역戰 치를 수도
중국이 특히 두려워하는 건 ‘산업의 쌀’인 반도체 규제다. 중국은 반도체가 첨단 기술에서 핵심이라고 보고 ‘제조 2025’ 등을 통한 반도체 기술 굴기를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반도체는 그만큼 첨단 인재와 대규모 투자 등 시간이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중국은 그간 국유기업을 내세워 미국과 유럽에서 인수합병(M&A)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14년부터 거의 6년간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59조원 규모를 투자했다고 한다. 대표적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가 받아간 자금만 29조원에 이른다. 최근 이 칭화유니가 디폴트를 선언했다. 미국은 중국 산업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반도체인 점을 감안해 반도체 기업들을 공략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샤오미 등이 미국 기업의 반도체를 사용해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건 인정하지만 중국 SMIC에 대한 수출을 막고 첨단 반도체 제조를 막고 있다. 반도체 조달난에 직면한 화웨이는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이 전년 대비 7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 수입할 수 있는 반도체는 1~2세대 전의 구식뿐이라는 말도 있다.
美 신뢰 복원엔 시간 걸릴 듯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최근 ‘미국과의 반도체산업에 대한 무역전쟁’이란 글에서 1980년대 미·일 반도체 협정과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분석했다. 미·일 반도체 협정에서 미국이 제시한 건 일본 반도체 회사들의 수출 제한과 미국산 반도체의 구매 확대였다. 일본은 이때 반도체산업을 펴지 못해 산업 전체의 활력을 잃었다는 시각도 있다. 피터슨연구소는 현재 반도체 기업은 외국 기업이 많지만 미국의 지식재산권에 의해 움직일 수 있는 기업들이라고 설명한다. 바이든이 이런 지식재산권으로 중국 기업들을 공략할 것이라는 게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기술패권의 다툼이 아니라 미국의 첨단기술 봉쇄정책이라는 언급도 있다.

바이든이 추구하려는 자유 동맹 또한 복원이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그만큼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가 미국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평가다. 물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다자 간 무역협상도 관심을 끄는 주제다. 다만 바이든은 대통령 선거 초반에는 TPP를 인정했지만 지금은 미국이 경쟁력을 갖기 전까지 이런 종류의 무역협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한다. 분명한 건 미·중 간 디커플링이 계속되긴 하겠지만 디커플링을 계속 조장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국은 소비재와 첨단기술의 무역구조를 달리 놓는 이원화된 무역구조를 갖고 있다. 바이든은 이 체제를 계속 유지해 나갈 것으로 본다. 디지털 무역도 미국이 안고 있는 숙제다. 미국의 고민이 깊을수록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큰 미국 동맹국들의 고민도 더욱더 깊어질 것이다. 한국은 더구나 반도체 강국이다. 미국과 중국이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략적인 모호성보다 각종 과제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역량과 경쟁력을 갖춰야 할 듯하다.
美, 작년 對中적자 '사상최대'
11월 300억弗…전월비 13%↑…수출은 양국 합의 수준에 미달
운동기구·장난감 등 수입 증가
되레 중국의 제조업 입지 강화


미·중 무역 갈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 7일 발표한 2020년 11월 무역통계에 따르면 상품의 대중 무역적자는 300억달러로 전달에 비해 13% 증가했다.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였던 2019년 동기에 비해서도 크게 증가해 지난해가 사상 최대 대중 무역적자의 해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인들이 휴가와 영화, 외식 등 주로 야외 활동에 사용해야 할 돈을 홈오피스용 조명이나 운동기구 장난감 등 가정용품에 소비한 게 주요 원인이다. 이런 제품들은 주로 중국에서 수입해 들여오는 제품군이다. 마스크와 PC 등 범용제품의 수입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대중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선호하면서 미국의 자전거 수요가 급증한 것도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작년 초 미국으로 공장을 가져오는 리쇼어링 순간을 맞게 될 것이라던 미국 정치인들의 주장과는 완전히 어긋난 상황이다. 오히려 중국의 제조업 입지를 강화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미국의 중국 수출도 늘고 있다. 지난해 1~11월 대중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9% 늘었다. 중국이 주로 구매하는 대두 및 기타 농산물 수출이 가을철에 급증했다. 이에 따라 11월은 로스앤젤레스 항구 역사상 가장 바쁜 달로 기록됐을 것으로 보인다. 미·중이 맺은 1단계 합의에서 2020년 대중 수출을 80% 늘리겠다고 했지만 실현되기까지는 아주 먼 상황이다.

전체 상품의 무역 적자도 지난해 11월 기준 854억8600만달러로 전달에 비해 6.3% 증가했다. 월별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치다. 수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영향으로 침체 이전 수준을 초과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수입은 2130억달러로 3.1% 증가했다. 코로나 감염이 본격화하기 전인 2020년 1월 수준을 크게 웃돌아 2019년 5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급격히 떨어졌던 개인 소비가 완만하게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수출은 세계 경제의 침체로 1.0% 증가한 1275억달러에 그쳐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중국으로의 수출이 전체 수출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분석된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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