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코리아 프리미엄' 파먹는 '디스카운트 집단'

입력 2021-01-12 17:36   수정 2021-01-13 01:01

퀴즈를 하나 내겠다. 10년 내에 본격적인 자율주행자동차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산업이 가장 큰 편승효과를 누리게 될까. 엔터테인먼트산업이 될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진단이다. 사람들이 운전하는 수고에서 해방되면 주행 중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즐기는 데 시간을 쓸 것이라는 전망이다. 퀴즈 한 가지 더. 사람들은 4대 엔터테인먼트(음악, 비디오스트리밍, 박스오피스, 게임) 가운데 어느 것을 가장 많이 즐기고 있을까.

4대 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에 답이 들어 있다. 2019년 음악시장은 210억달러, 비디오스트리밍은 430억달러, 박스오피스는 420억달러였다. 게임은 1520억달러로 다른 세 산업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컸다(IBIS 등 관련 기관 통계 종합). 자율주행 시대에 들어서면 엔터테인먼트, 특히 게임시장이 더한층 폭발적으로 팽창할 게 분명하다. 이런 게임산업에서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등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누비고 있다. 지난해 수익 1조원 가운데 80%를 해외에서 벌어들인 ‘배틀그라운드’의 크래프톤 등 비상장 게임회사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바이오헬스산업의 도약은 더 극적이고 눈부시다. 10년 전 강장음료 ‘박카스’를 앞세운 동아제약이 시가총액 1조원으로 업종 1위였지만, 지금은 업계 시가총액 합계가 300조원을 넘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55조원), 셀트리온(50조원) 등 수십조원짜리 회사가 여럿이다. 지난 11일 나흘간 일정으로 막을 올린 바이오분야 세계 최대 행사 ‘JP모간 헬스케어 콘퍼런스 2021’은 차원이 달라진 ‘K바이오’의 국제위상을 보여줬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이 메인 발표자로 개막식을 장식했고 제넥신, 휴젤, LG화학, 한미약품, HK이노엔 등 다섯 개 한국 기업이 세션행사 무대에 올랐다. 삼성바이오와 셀트리온 SK바이오팜 등은 ‘21세기 노다지’로 불리는 바이오의약품 CMO(위탁생산) 시장에서 세계 최강자 자리를 다져나가고 있다.

한국 증권시장의 상승 행진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게 이런 것들이다. 증시 도약을 이끄는 산업과 기업이 다양해지고, 글로벌 위상도 눈부시게 높아졌다.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가전 배터리 등 기존 주력산업 기업들도 질주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수소차 기술 선점에 이어 애플과의 전기자동차 합작파트너로 세계 투자자들의 주목을 모으고 있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등이 구축한 반도체와 배터리 등의 철옹성이 점점 더 탄탄해지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13년간의 ‘2000대 벽’을 깨고 3100까지 넘어선 것을 ‘유동성 거품’으로만 뭉갤 수 없는 이유다. “증권시장을 예전 잣대로 봐선 안 된다. 새 성장동력이 출현했고, 주력 기업들이 확실하게 한 단계 레벨업(level up: 지위 상승)했다. 건설·철강·조선 등 과거 대표산업이 어려운 것만 보면 큰 그림을 놓치게 된다.” 증권시장 베테랑들의 얘기다.

새 주도산업 급부상과 더 강력해진 대형 우량기업들의 활약, 그 덕분에 탄탄해진 증권시장은 확실히 희망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신년사에서 “위기 속에서도 한국 경제의 미래 전망이 밝음을 증권시장이 보여주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시대가 끝나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 이유일 것이다.

짚어야 할 게 있다. ‘코리아 프리미엄’을 이끄는 기업 상당수가 큰 폭의 고용 확대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바이오, 게임 등 새 성장동력 산업이 특히 그렇다. 그런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호령하며 증권시장에 신바람을 불어넣는다고 해서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일자리 문제 해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식에 투자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 격차와 괴리가 커지는 문제가 생긴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줄어든 일자리로 인해 국내 빈곤층(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이 지난 4년 새 55만 명 늘어난 터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빈곤층이 25% 늘었고, 박근혜 정부 때에 비해 증가 속도가 2.4배 빨라진 건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그런 현실에 눈감은 채 기업들이 밤잠을 설치고 피땀 흘려가며 일궈나가고 있는 ‘코리아 프리미엄’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건 민망한 짓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해야 할 일에 눈 똑바로 떠야 한다.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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