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외교가 필요한 이란의 韓선박 나포

입력 2021-01-12 17:37   수정 2021-01-13 00:13

새해 벽두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을 항행하던 한국선박 ‘MT-한국케미’를 나포해 반다르아바스 항구로 이동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동기와 사실관계가 불명확해 대응이 쉽지 않지만 법적·정치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법적 측면에서 볼 때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오만·아랍에미리트(UAE)의 영해가 겹쳐 공해가 없는 국제통항에 이용되는 국제해협이다.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은 영해가 12해리로 확대되는 데 따라 공해가 없어지는 118개의 국제해협에 대해 외국 선박·비행기에 ‘중단되지 않는’ 통항의 자유를 인정하는 ‘통과통항’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이란은 이 협약에 서명만 하고 비준을 하지 않아 당사국이 아니다. 1993년 이란 해양구역법은 영해, 배타적경제수역, 대륙붕 등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면서도 통과통항은 도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란이 협약서명 시 해석적 선언으로 통과통항은 협약당사국에만 적용된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통과통항 제도가 영해 폭을 확대하는 조건으로 창설된 제도라는 점에서 통과통항은 이란에도 적용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제해사기구(IMO)가 호르무즈 해협에 통과통항 제도상의 통항분리를 도입해 2개 수로를 지정, 왕복통항에 분리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이란의 한국케미호 나포사건은 국제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 통항량이 매우 많은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해양오염이 발생하면 곧바로 인지된다는 점에서 선사의 주장이 신빙성이 높다. 협약상 연안국은 심각한 손해를 미치는 배출이 없는 한 선박을 억류할 수 없다. 이란과의 협상에서 합리적 근거가 없는 선박나포로 인한 국제법 위반에 대한 국가책임 문제를 제기하면서 선원·선박의 신속한 석방을 요구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 내 통항의 자유 확보는 에너지 수입의 대부분을 중동에 의지하는 우리에게는 사활적 이익인 만큼 원칙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해야 한다. 협약 제220조 7항에는 보석금 예치 시 선박 항행을 계속하도록 하는 제도를 연안국과 합의로 마련할 수 있는 바, 향후 대비를 위해 협정 체결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 이란과의 교섭에 다음 사항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선원·선박 석방문제는 다른 현안과 분리 접근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미·이란 대결 구도에 연계하려는 움직임도 배제해야 한다. 둘째, 이 사건의 동기는 이란의 내부동향을 볼 때 동결된 석유대금 관련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양국 간에 교섭 중이었으므로 연장선상에서 바이든 정부 출범에 따른 유연성을 추가로 확보하는 출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셋째, 위기관리에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1개월 전 나포 가능성 첩보가 있었는데도, 최영함이 사건 후에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동한 사실이나, 그 전에 이란 정부와의 문제해결 노력이 불충분했던 점은 문제다. 이번 나포 주체는 이란 정규군이라는 점에서 종래 청해부대가 해적에 대처하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넷째, 앞으로도 호르무즈 해협 통항문제는 우리에게 중요하므로, 장기 대안을 찾아봐야 한다. 유럽연합(EU)은 프랑스 주도로 8개국이 유사의지연합인 ‘호르무즈해협 유럽해양상황평가단(EMASOH)’을 운용하고 있으며, 인도·일본도 군함을 파견해 유사한 대응을 하고 있다. 청해부대만으로는 광역해역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우므로, 이들 국가와 통항안전 확보를 위한 큰 틀을 만들거나 협업방안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섭의 장기화에 대비해 한국 및 이란과 관계가 좋은 카타르나 오만을 한·이란 교섭에 촉진자로 활용하는 게 좋을 것이다.

중동 정세는 바자르의 미로처럼 복잡하고 교섭에 능한 이란과의 협상은 쉽지 않다. 우리는 통상국가로서 세계를 상대해야 하므로 우리 국민·기업의 안전에 관한 위기관리를 체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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