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집 사장 "건축은 상상력으로 감동 주는 일…유럽 골목길처럼 호텔 지하 꾸몄죠"

입력 2021-01-14 17:31   수정 2021-01-15 02:21


호텔 1층 입구에 들어서자 분홍과 초록빛이 섞인 몽환적인 느낌의 실내 정원이 눈길을 잡아끈다. 뚫려 있는 천장을 통해 빛이 쏟아져내리며 마치 나뭇가지 위에 하얀 눈꽃이 핀 듯한 효과를 낸다. 기존 호텔 1층에 자리잡고 있는 프런트를 2층으로 밀어올리고, 1층엔 지중해식 레스토랑과 수제맥주펍, 지하엔 식당뿐만 아니라 서점과 공예품점, 패션숍 등을 배치해 누구나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伊 마을처럼 조성한 상업시설

지난해 8월 문을 연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은 고정관념을 깬 호텔이다. 2018년 요진건설산업이 인수한 캐피탈호텔이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장했다. 이 호텔의 리모델링 설계를 한 간삼건축의 김태집 사장은 “호텔은 인근 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호텔의 역할이 여행객에게 방을 제공하는 데서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데 착안했습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2030세대는 좁은 공간에서 음악조차 크게 틀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했죠. 호텔 커뮤니티 시설을 1인 가구 2030세대 누구나 자기 집 거실처럼 원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하고 싶었습니다. 놀라운 상상력으로 감동과 행복을 제공하는 게 건축의 역할이니까요.”

커뮤니티 시설을 설계하면서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역의 몬테풀치아노를 모티브로 삼았다. 그가 즐겨 찾던 여행지다. 작은 마을의 좁은 골목길에 식당, 술집, 공예품 판매점 등이 오밀조밀 늘어서 있어 먹고, 마시고, 즐기고, 소비하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공간을 호텔에 구현했다. 김 사장은 “호텔 커뮤니티 시설은 마을의 상점들처럼 다양한 업종을 섞어 식당을 찾아 들어온 사람이 서점에도 들르고, 공예품도 살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불러모으는 상생 구조”라는 설명이다.
행복한 주거공간을 위한 고민
김 사장은 1983년부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건축가다. 간삼건축에 1991년 입사해 2009년부터 13년째 사장으로 회사를 키워낸 그가 건축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풀어놨다.

“건축이란 공간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고 대중에게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겁니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창의적인 디자인을 실현해 즐거움, 경이로움, 놀라움을 선사하는 게 본질이죠. 이를 통해 건축주와 시민들이 감동받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이 같은 철학을 주거공간으로도 확장했다. 은퇴 후 서울을 벗어나고 싶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은퇴자를 위한 ‘공유주택’을 구상했다. 지방의 한적한 마을에 500가구 규모로 700~800명이 살 수 있는 공간을 계획하고 있다. 전원생활을 즐기면서도 공유경제의 생산자이자 이용자로 활동할 수 있는 주거단지가 기본 개념이다.

이 단지에서는 공유 자동차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제과점과 텃밭에선 구성원들이 함께 빵과 채소를 생산한다. 이 공간에서 자신의 경력과 능력을 활용해 일하면서 소정의 소득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같은 공유주택 1호점을 올해 안에 강원 양양군 손양면 지역에 착공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공유주거 사업을 하는 홈즈컴퍼니가 운영하고 간삼건축이 설계를 맡았다”며 “이런 공유주택을 전국에 100곳 정도 조성하면 수도권 쏠림 현상을 피해 지방의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자기 공간이 좁아지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2030세대를 위한 공동주택도 기획 중이다. 김 사장은 “원룸 면적이 보통 33㎡에서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젊은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다”며 “거주자들이 방을 원하는 형태로 바꿀 수 있는 가변형 주택으로 좁은 공간도 더 넓게 쓸 수 있도록 설계를 구상 중”이라고 설명했다. 가구도 각자 선택하고 시간이 지난 뒤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건축이 사회에 기여해야 합니다. 건축가는 시민의 생활 문제, 도시 문제, 사회 문제를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공간을 바꿔 이용자들이 행복하다면 건축가들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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