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수출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부산항에 컨테이너선이 ‘실종’된 탓이었다. 중국 때문이었다. 중국은 코로나19 상황을 수습한 뒤 작년 하반기 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세계 주요 선사는 일감이 많은 중국에 몰려갔다. 컨테이너선 대부분이 중국에 투입되면서 세계 컨테이너선 운임도 요동쳤다. 한국 기업들이 부산항에서 웃돈을 얹어줘도 컨테이너선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 같은 컨테이너선 운임 상승과 부족 문제는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선 올 들어 철광석, 석탄 등의 재고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2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작년 12월 1억3000만t을 넘었던 중국 철광석 항구 재고가 한 달 만에 1000만t 안팎 감소해 1억2000만t 수준까지 내려왔다. 중국 내 제철소 가동률이 높아지자 철광석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철광석을 소비하는 중국 내 제철소들은 최근 가동률을 높이고 있다. 전기차 판매 급증, 건설 공사 확대 등 철강 수요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내 전력 수요 증가도 한 원인이다. 석탄 등 화력발전 비중이 50%를 넘는 중국은 겨울 한파가 닥치자 석탄, LNG 등 화석연료 수입을 빠르게 늘렸다. 이 영향에 세계 주요 선사들은 건화물 벌크선뿐 아니라 LNG선까지 중국 쪽에 투입하고 있다. 중국은 기존 호주 브라질 외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으로까지 수입처를 다변화하며 벌크선 운임을 주도했다. 벌크선은 대부분 장기 계약을 맺고 기업들이 전용선처럼 운영한다. ‘스폿(단발)’ 성으로 잠깐 이용하는 배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 일부 물량을 중국이 싹 쓸어가자 한국 일본 동남아 등에서 벌크선, LNG선을 추가로 구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
내년 도입 예정인 환경규제도 원인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작년부터 모든 선박에 대해 연료의 황 함유량을 기존 3.5% 이하에서 0.5% 이하로 낮췄다. 이를 맞추려면 노후선박에 탈황설비를 설치해야 하는데 여기에 3~6개월이 걸린다. 해운사들은 작년부터 탈황설비 구축작업에 들어갔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규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세계 각국의 타깃이 될 수 있다”며 “주요 선사가 전부 규제를 맞추려 할 것”이라고 했다.
공장 가동 중단까진 아니지만 어려운 회사가 다수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인도를 오가는 벌크선 운임이 작년 하반기 대비 네 배 가까이 올랐다”며 “물량을 한꺼번에 모아서 보내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갈수록 배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도 “원료를 해외에서 수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생산 차질이 빚어질까 봐 상황을 일일이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전했다.
협상력이 약한 중소기업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작년 말에는 미국 항로에서 물류대란이 집중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유럽 동남아 항로 운임까지 급등하면서 이 지역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벽지용 원단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이석우 이데코아이앤씨 대표는 “제품 원가에서 운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년 상반기엔 10% 미만이었는데 지금은 30%까지 올랐다”며 “이마저 제때 물건을 보내지 못해 계약이 틀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해운사의 ‘갑질’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전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 조건을 변경하거나 파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 조선 부품업체 사장은 “요즘 해운사에 운임을 문의하면 자리가 없다는 것이 첫마디”라며 “계약을 연기하는 등 대안을 찾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안재광/최만수 기자 ahnj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