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비핵화 쇼'에 잃어버린 3년…또 속지 않으려면

입력 2021-01-20 17:45   수정 2021-01-21 00:15

결국 다시 핵이었다. 지난주 끝난 북한의 8차 노동당 대회는 미국을 향한 핵 협박 이벤트나 다름없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입에선 소형 전술핵·핵잠수함·초대형 수소탄 등 무지막지한 단어들이 쏟아졌다. 미 본토를 넘어 유럽까지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거리 확장 목표까지 제시했다. “적이 핵을 사용하지 않는 한 우리도 (핵을) 쓰지 않겠다”는 진부한 레퍼토리의 겁박도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보란 듯이 미국이 그어놓은 레드라인 밖으로 발을 내밀며 도발한 것이다. 김정은이 지난 3년간 진행된 미·북 비핵화 협상의 공식 종료 버튼을 누른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남북 공동기획, 도널드 트럼프·김정은 주연의 한반도 비핵화 드라마는 이렇듯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버렸다. 2018년 2월 북한이 숟가락을 얹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그해 6월 미·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시작된 미·북 비핵화 협상은 결과적으로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단 한 발짝의 진전도 이뤄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세계사적 사건으로 치켜세웠던 미·북 정상회담 및 비핵화 협상이 미국과 북한, 그리고 우리 정부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세계적인 쇼’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김정은이 이번 당대회에서 “축적된 핵기술이 더욱 고도화돼…(중략) 초대형 수소탄 개발이 완성됐다”고 스스로 실토했듯 북한에 3년의 핵개발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북한은 핵보유국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이다. 1990년대 초 미국의 눈을 피해 도둑질하듯 핵무기를 개발하던 때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이젠 스케일과 체급 자체가 달라졌다. 2017년 9월 여섯 번째 핵실험을 통해 수소탄 폭발 시험을 끝냈고, 같은 해 11월 대외에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수소탄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 대비 최소 5배 이상의 파괴력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탄두만 50~80개에 달하는 것으로 미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북한에 핵은 독재 세습체제 유지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이자 가장 효과적인 대남·대미 협상 수단이다. 핵개발 과정에서 유발된 대외 갈등을 내부 결집의 원동력으로 삼고, 잇따른 경제 정책 실패를 대북 제재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북한이 김일성 시대부터 30여 년간 온갖 기만·교란 전술을 총동원해 핵을 지켜온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1993년 1차 북핵위기와 2002년 2차 북핵위기 당시 검증하기 힘든 비핵화 약속을 미끼로 던져 교묘하게 돌파구를 찾았고 핵을 개발하는 시간을 벌었다. 지난 3년간의 비핵화 협상에서도 ‘선(先) 제재 완화, 후(後) 비핵화’를 요구하며 시간을 끌었다.

또 한편의 한반도 비핵화 드라마가 허망하게 끝났다. 하지만 적어도 북한이 체제 보장을 담보하는 핵을 버리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재각인하는 계기는 됐다. 외교 방식이 아니라 국제사회와 공조를 맞춘 대북제재 압박만이 실효적인 비핵화를 이끌어낼 것이란 주장에 다시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북한의 핵무력 과시는 언제나 새로운 비핵화 사기극의 전주곡이 돼왔다. 이번 핵위협에도 여전히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시사했다”며 무한 긍정론을 펴는 정부의 현실 인식이 걱정되는 이유다. 북한 비핵화보다 남북관계 개선이 먼저라는 정부의 구상은 인과관계를 뒤틀어버린 판단 착오에 가깝다. 현실과 희망 사항을 혼동하는 순간 비핵화 쇼의 막은 다시 오른다.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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