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고기를 먹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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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1-25 09:01  

누구나 고기를 먹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소는 중요하고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그러나 농부가 트랙터, 경운기 역할을 하는 소를 잡아먹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소를 잡더라도 고기를 장기간 보관할 수도 없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인간을 ‘빵을 먹는 존재’로 정의했듯이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곡물을 경작(cultivate)해 빵을 만드는 것이 곧 문화(culture)이자 문명이었다. 유럽 북부의 게르만족, 켈트족 등이 즐기는 육식은 야만으로 간주됐다.

소는 식용으로 거의 키우지 않았다. 초지가 부족해 종일 풀을 뜯는 소를 고기로 먹는 것이 비경제적이었던 탓이다. 그래도 영양 보충을 위한 육식은 필수였다. 로마시대 상류층의 연회에서는 주로 돼지나 양, 닭, 오리 등의 고기를 먹었다. 대다수 평민은 ‘빵과 서커스’ 정책에 따라 무상으로 돼지고기와 기름이 배급될 때나 맛볼 수 있었다.

육식은 게르만족이 지배계급으로 올라선 중세에도 선호됐다. 특히 프랑크왕국에서는 육식 금지가 무장해제와 동일한 처벌로 간주됐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기, 특히 소고기는 여전히 왕과 귀족이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농노들은 어쩌다 고기가 생기면 스프나 스튜로 먹었을 뿐 주식은 빵이었다. 그나마 해마다 곡식을 모두 소진한 늦겨울과 아직 덜 자란 한여름에는 굶주림이 되풀이됐다.

15세기 말 대항해시대도 소고기와 연관이 있다. 모험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먼바다로 나간 것은 이슬람 세력에 의해 막힌 후추 수입항로 개척이 주목적이었다. 냉동 냉장기술이 없어 고기 부패를 막고 풍미를 살리는 후추 등 향신료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소고기, 음식에서 요리로
고기를 불에 구은 스테이크는 본래 북유럽의 거친 야만족 식습관에서 유래한 것이다. 직접 불에 구운 고기는 폭력성, 호전성의 이미지가 있다. 특히 왕의 식단은 고기 일변도였다. 지금은 질병으로 치부되는 비만이 당시에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절대왕정시대에 접어들자 왕이 권력 과시 목적으로 자주 연회를 열면서 궁정 예절과 식사 예법이 생겨났다. 세계 최고 요리로 꼽히는 프랑스 요리는 왕실 결혼에서 출발했다. 1533년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카테리나가 프랑스 앙리 2세의 왕비가 되면서 피렌체의 요리사와 식재료, 조리법, 식탁 매너 등이 프랑스로 함께 들어왔다. 프랑스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 전까지는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

왕실과 귀족의 과시적인 육식 문화는 신흥 부르주아계급으로 전파됐다. 무역과 상거래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는 정치적 발언권이 세지고 경제력을 갖춘 만큼 음식 문화에서도 귀족을 모방했다. 하지만 가난한 평민들에게 소는 여전히 농사용일 뿐이었고, 단백질 공급원은 소가 공급하는 우유와 치즈에 국한됐다.

유럽에서 일반 시민이 소고기를 맛보게 된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신대륙에는 광활한 초원에 방목하는 소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신대륙의 소고기를 운송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려 부패를 막을 수 없었다. 이 문제는 증기선 냉각장치가 발명되면서 해소됐다.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된 소고기가 신선한 상태로 무더운 열대지방을 지나 유럽으로 수입된 것이다.
다른 육식에 대한 금기
모든 시대, 모든 민족이 육식을 선호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소, 말, 돼지 등의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금기가 존재한다. 인도 힌두교의 암소 숭배 교리는 종교적·경제적 이유로 육식을 허용할 수 없는 대표적 사례다. 인구가 많은 인도에서 암소는 소고기로서의 가치보다 농사에 필수인 수소를 낳는 기능이 훨씬 가치가 높기에 힌두교 교리에 반영된 것이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말과 낙타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말과 낙타는 초원이나 사막에서 자동차와 같은 필수 이동 수단이다. 몽골 군대가 말고기를 먹는 경우는 식량이 고갈된 비상시로 국한됐다. 유럽에서도 전쟁에 필수인 말을 고기로 먹는 것을 오랜 기간 금기로 여겼다. 이에 비해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 돼지고기를 금지한 것은 환경적 요인이 크다. 습한 환경이 필요한 돼지는 건조한 사막에서 사육이 어렵고, 인간과 먹이를 경합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1200년간 육식을 금지했던 나라도 있다. 일본은 675년 불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네발 달린 포유류의 고기를 먹는 것을 다 금지했다. 고기를 먹다 적발되면 외딴 섬으로 귀양을 보냈다. 일본에서 육식 금지가 풀린 것은 1853년 개항 이후 서양의 육식 문화가 유입되면서다.
소고기 산업화의 빛과 그늘
19세기 말 소고기가 대중화하면서 미국에서는 소 사육과 도축이 규모 있는 산업으로 발전했다. 미국 중서부 대평원에서는 옥수수가 대량 재배돼 그 주위에 소 사육지대가 형성됐다. 옥수수 재배 지역은 긴 띠처럼 형성돼 콘 벨트, 소 사육지대는 비프 벨트로 불린다. 콘 벨트와 비프 벨트가 만나는 지점인 시카고에 자연스레 대규모 도축장과 가축, 곡물 등을 거래하는 세계 최대 상품거래소가 들어섰다.

오늘날 ‘육식의 산업화’는 불가피하다. 방목하는 소만으로 육식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는 세계적으로 약 10억 마리가 사육되고, 한 해 3억 마리가 소비된다. 개발도상국의 소득수준 향상으로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소고기가 대량생산되는 산업화 속에 발생한 것이 광우병이었다. 또한 환경과 건강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소고기 1㎏을 얻으려면 그 100배에 달하는 풀과 사료가 필요하다. 그만큼 소고기는 고비용이고, 비효율적 에너지 소비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게다가 육식은 콜레스테롤과 각종 성인병의 위험을 높인다. 누구나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육식 과잉은 생각해 볼 문제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많은 나라에서 소고기가 돼지고기보다 비싸지만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아르헨티나 캐나다 러시아 등에서는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더 비싼 이유는 왜일까.

② 인도인 용병들이 영국에 대항해 벌인 세포이 항쟁(1857~1858)은 소총의 탄약통에 소기름과 돼지기름을 발랐다는 소문이 촉발했다는데, 육류에 대한 금기가 힌두교도 혹은 이슬람교도들이 전쟁을 불사하게 하는 원인이 될까.

③ 3대 영양소의 비율을 탄수화물 50%, 지방 30%, 단백질 20%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현재 한국인의 식습관을 감안할 때 어느 쪽을 줄이고 어느 쪽을 늘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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