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수단,가치 척도·저장…비트코인도 '화폐 3대 기능' 있나

입력 2021-01-25 09:01  


화폐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고팔도록 이어주는(교환의 매개 기능) 역할을 한다.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기(가치의 척도 기능)도 하고 화폐 그 자체로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고(가치의 저장 기능) 있기도 한다. 이를 화폐의 3대 기능이라고 한다. 물품값 지급이나 결제도 화폐의 중요한 기능이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혹은 가상화폐)가 세상에 나온 지 13년이 됐지만 여전히 이들이 화폐인지를 놓고는 논란이 분분하다.
교환의 매개 기능을 하는가
우리 주변에는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가게가 별로 없다. 어느 피자집이 비트코인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 색다른 뉴스로 거론되기도 한다. 코인맵 등 비트코인 가맹점을 보여주는 앱도 있지만 실제 사용 가능한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암호화폐 가맹점 정보를 담은 상당수 앱들은 지금 작동하지 않는다. 사실상 교환의 매개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글로벌 핀테크 업체인 페이팔이 올해부터 전 세계 2600만 가맹점에서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하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페이코인이라는 암호화폐를 국내에 유통 중인 다날은 지난해 10월 기준 6만 개 이상의 가맹점을 확보했고, 글로벌 결제업체인 유니온페이와 손잡고 전 세계 3000만 가맹점에서 사용토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암호화폐를 쓸 수 있는 곳이 앞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가치의 저장 기능을 하는가
비트코인이 디지털 화폐 대신 디지털 자산으로 그 정체를 변신했다는 주장도 있다. 교환의 매개가 아니라 가치 저장의 수단으로 재조명받고 있다는 것. 채굴 과정의 어려움과 희소성을 내세워 ‘디지털 금(金)’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의 ‘무제한 돈 풀기’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달러를 대신해 비트코인이 자산을 보관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정부와 원화를 발행하고 통화량을 관리하는 한국은행은 아직까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정식 화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오는 3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현재 50개 정도로 추정되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가 일부 정리되는 등 거래의 투명성과 안정성이 높아지리라는 설명이다. 대법원은 지난 14일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네스트의 전 대표 A씨에 대해 암호화폐 개발업체 대표로부터 6700만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받고 상장 편의를 봐준 ‘배임수재’ 혐의로 1년6개월의 징역형을 확정했다. 한때 국내 규모 4위의 암호화폐 거래 사이트였던 이 업체는 2019년 4월 대표이사의 구속 이후 서비스가 중단됐다. 어쨌거나 법원도 ‘뇌물’로 쓰인 암호화폐의 자산가치를 인정한 셈이다.

나아가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말 세법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비트코인 투자수익에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블랙잭 등 카드게임으로 돈을 벌어도 세금을 내지 않는데(슬롯머신은 과세함)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도 않는 암호화폐에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가치의 척도 기능을 하는가
비트코인은 한 단위(BTC)당 가격이 2017년 12월 1만9783달러까지 올랐다가 폭락해 2018년 12월 3177달러까지 내려갔다. 2019년 6월 1만3929달러까지 다시 올랐다가 지난해 3월 4546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후 꾸준히 올라 올 들어 4만1921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급등락을 반복하니만치 적정한 가격이 얼마인지에 대해 시선이 엇갈린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간은 비트코인이 장기적으로 14만60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보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모든 거품의 어머니’일 수 있다며 버블론(투기에 의해 가격에 거품이 끼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국가 주도의 암호화폐라면
암호화폐는 탈(脫)중앙집권화를 지향한다. 그러나 디지털 공간에서 위·변조를 막는 블록체인 기술에 주목하며 국가들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은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하고 위안화를 세계 기축통화(국가 간 결제나 금융거래에서 통용되는 대표적인 통화)로 만들기 위해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일 광둥성 선전 시민 10만 명에게 추첨을 통해 총 2000만위안(약 33억5000만원)어치의 디지털 위안화를 나눠줘 공개적인 사용에 나섰다. 미국 중앙은행(Fed)도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함께 CBDC 개발에 착수했고, 재무부 통화금융청(OCC)은 지난 5일 암호화폐 관련 가이드라인을 승인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해 6월 CBDC 관련 연구개발을 하겠다는 장기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법정 디지털 화폐가 가시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가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비트코인 가맹점이 늘어날 수 있을까.

② 기획재정부가 ‘수익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법정 화폐로 인정하지도 않는 암호화폐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것이 옳은 일일까.

③ 어느 나라의 간섭도 받지 않고 세계인 누구나 쓸 수 있는 디지털 화폐와 특정 국가가 지급을 보증하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가운데 어느 쪽이 바람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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