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반구대 고래가 춤을 추려면

입력 2021-01-25 17:26   수정 2021-01-26 00:04

울산 대곡천 계곡에는 공룡 발자국을 비롯해 수많은 선사시대 유적이 남아 있다. 국보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은 너무나 소중하다. 반구대는 300여 종의 동물 그림을 사실적으로 새겼고, 천전리는 동심원과 번개무늬 등 기하학적 문양이 주를 이룬다. 시대가 앞선 반구대 그림이 수렵민의 주술을 조각한 것이라면, 태양과 비를 상징하는 후대의 천전리 문양은 농경민의 염원이라고 해석한다. 인류는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잡식동물이다. 대곡천 선사인들은 반구대 수렵과 천전리 농경으로 필수영양소를 얻었다.

미술사가 아놀드 하우저는 선사 미술이 대상을 충실히 묘사하는 사실주의 경향에서 점차 추상적이고 상징적으로 변했다고 설명한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순수한 눈이 사물의 배후를 읽고 생각을 더한 개념적 눈으로 바뀌었다는 해석이다. 반구대의 사실주의 그림이 천전리의 상징적 문양으로 변화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반구대 암각화는 모두 67마리의 고래 그림을 새겼다. 분기공으로 물을 뿜는 모습, 작살 맞은 모습, 새끼를 등에 붙이고 유영하는 모습 등 고래의 생태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뿐만 아니라 북방긴수염고래 귀신고래 혹등고래 범고래 향유고래 등 여러 종류의 고래를 구별해 조각했다. 선사시대 고래 그림은 노르웨이의 알타 암각화 정도이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포경의 기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 유적은 사슴 순록 들소 등 주로 육상동물의 사냥 모습을 새긴 것이고, 고래잡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양적, 질적, 시기적으로 압도적인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잡이의 세계적 기원임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반구대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지 못했다.

보존 상태와 주변 환경이 문제다. 1965년 반구대 하류에 사연댐이 건설됐고 만수 시 60m까지 수위가 올라간다. 암각화는 52m 높이부터 새겨졌고, 매년 몇 개월씩 물에 잠겼다 말랐다 하며 바위 표면이 떨어져 나가는 등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7000년 세계적 유적을 현대 한국인이 50년 넘게 파괴 중인 것이다. 문화재당국과 전문가들은 댐을 없애든지 적어도 52m 이하로 수위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울산시는 식수 부족을 이유로 댐을 유지하며 동시에 암각화 앞쪽에 생태제방을 쌓아 보존하겠다고 한다. 두 주장은 서로 타당한 근거를 대며 15년 이상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암각화는 더 떨어져 나가고 희미해지고 있다. 새우 싸움에 고래 등이 터지는 꼴이다.

늦었지만 다행히도 작년 말 한국수자원공사와 울산시가 협약을 맺어 식수 보완과 암각화 보존을 병존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댐에 갇힌 반구대의 고래를 춤추게 하려면 칭찬만으로는 모자란다. 고래는 바닷속에서 살아야 하듯이, 공룡이 다니고 바위 그림을 우러러봤던 대곡천 계곡의 생태환경을 복원해야 암각화 속의 고래가 춤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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