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영원한 철권은 없다

입력 2021-01-25 17:47   수정 2021-01-26 00:12

정치·경제·외교의 모든 결정권을 최고 권력자가 쥐고 흔드는 ‘차르주의’는 러시아에서 오랜 기간 변함없이 유지돼 왔다. 이반 3세가 ‘전(全) 러시아의 전제군주’를 자칭한 뒤 이반 뇌제, 표트르 대제와 현대의 레닌, 스탈린을 거쳐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절대권력자 1인에게 집중된 통치의 본질은 바뀐 적이 없다.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러시아 특유의 전제정치는 서유럽과 구분되는 특징이기도 했다. 영국 시인 러디어드 키플링은 “동양(러시아)과 서양(서유럽)은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라며 ‘이질감’을 읊었다. 이에 러시아에서도 “러시아를 이해하려 하지 마라. 러시아는 그저 느낄 수 있을 뿐”(시인 표도르 추체프)이라며 바깥세상과 선을 그었다.

‘차르’들의 권력은 강고했지만 그렇다고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목숨을 걸고 군중 앞에 선 인물들에 의해 구체제가 힘없이 무너지곤 했다. 1917년 독일의 도움을 받아 망명지 스위스에서 봉인 열차를 타고 귀국했던 블라디미르 레닌에 의해 사회주의 소련이 등장했다. 1991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쿠데타 군의 탱크 위에 올랐던 보리스 옐친은 소련의 해체로 귀착됐다.

지난 23일 러시아 전역 100여 개 도시에서 푸틴 대통령의 정적(政敵)인 알렉세이 나발니를 석방하라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러시아 정부가 코로나 확산을 막겠다며 집회를 불허했지만 모스크바에서만 4만여 명이 참여했다. 1999년 집권 후 철옹성 같던 푸틴 정권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다.

이번 시위에서 ‘철권통치’ 붕괴 공식을 떠올리는 시각이 많은 점도 눈길을 끈다. 1905년 1월 혁명, 1917년 2월 혁명 때처럼 이번에도 혹한 속에서 반(反)정부 열기가 분출됐다. 독극물 테러에도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나발니는 러시아의 영웅 서사시 《이고리 원정기》 속 영웅에 비유된다. 무엇보다 독일에서 치료 뒤 체포될 줄 뻔히 알면서도 귀국을 선택한 모습에서 레닌의 귀국 모습을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모스크바공항 앞에서 ‘알렉세이’를 외친 시위대는 페트로그라드역에서 레닌을 연호했던 군중과 겹쳐진다.

푸틴 대통령은 어느새 ‘국제정치 거물’로 훌쩍 큰 나발니를 맘대로 ‘처리’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미국 등 국제사회뿐 아니라 러시아 국내에서도 독재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영원할 것 같던 ‘철권 정치’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 모습이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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