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왕도 백성도 모두 떨게 만든 '조선 괴물 이야기'

입력 2021-01-28 17:40   수정 2022-03-23 12:25

“강철이 지나간 곳은 가을도 봄과 같다.” 17세기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는 한국 속담에 등장하는 ‘강철’을 묘사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수광은 시골 노인에게 강철이 무엇인지 물었다. 노인은 재해를 일으키는 괴물이라며, 강철이 나타나면 몇 리에 달하는 지역의 풀, 나무, 곡식이 모두 타 죽는다고 알려준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괴물들이 등장했다. 백성들의 생활을 망친 괴물도 있었고, 궁궐을 뒤집어 놓은 괴물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괴물과 관련된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은 KAIST 출신 공학박사이자 SF 소설가인 곽재식 작가가 조선의 괴물 이야기를 통해 그 속에 담긴 옛사람들의 다양한 풍경을 그린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괴물들을 중심으로 총 20종을 뽑아 관련된 사연을 정리했다. 저자는 ‘백성과 괴물’ ‘왕과 괴물’ ‘외국에서 온 괴물’의 세 부분으로 나눠 소개한다.

머리는 하나인데 입은 세 개인 ‘삼구일두귀’는 조선 전기의 전라도에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단초가 된다. 이 괴물은 밥을 아주 많이 먹고 예언하는 능력을 가졌다. “‘이번 달에는 비가 오고 다음 달 스무날에 비가 올 것”이라고 일기예보를 알렸다. 농사일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농민들의 마음이 엿보이는 이야기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구성’은 바다에 재앙을 몰고 왔다. 천구성이 떨어진 바다는 붉은 피로 물들고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천구는 하늘의 개라는 뜻인데 혜성이나 유성이 지나갈 때 생기는 빛나는 꼬리 때문에 이런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저자는 추측한다.

중종 때 궁궐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짐승인 ‘물괴’는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하다. 단순한 목격담을 넘어서 민심을 술렁이게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사건이었다. 물괴가 처음 등장한 1511년 5월 9일 바로 전날 종묘 담장 밖에서 불이 나 민가 67채가 탔다. 저자는 백성이 화재로 집을 잃고 절망하는 상황에서조차 정신없이 정치 다툼에 빠진 궁궐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떠돌이 개조차 괴물로 보였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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