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단독주택에 사는 이유

입력 2021-01-28 17:27   수정 2021-02-05 18:11


#띵동띵동. 또 아랫집이다. 인터폰을 들고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아직 어린 아이는 가르쳐도 금방 까먹고 뛰기 일쑤다. 낮 시간에는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지만 저녁에는 방법이 없다.

#드르르륵 쿵. 윗집에서는 또 자정이 다 돼서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린다. 늦게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신혼부부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소음은 견디기 힘들다. 어쩔 수 없이 밤잠을 설친다.

이렇게 살다가는 스트레스로 병에 걸릴 것만 같다. 집에 오는 게 두렵다. 오늘은 또 무슨 소리가 들릴까, 아이가 뛰면 어떡하지 걱정만 커진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이가 맘껏 뛰놀 수 있는 곳으로 떠나기로. 그렇게 나는 차가운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으로 갔다.

단독주택이 재조명받고 있다. 5060세대 은퇴자들이 노후 생활을 위해 가는 전원주택이 아니다. 층간 소음을 피하고, 자연을 벗삼은 생활을 원하는 3040세대가 단독주택을 선택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집에 대한 생각을 바꾼 계기가 됐다. 재택근무, 온라인 학습 등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집이 생활에서 갖는 의미가 커진 것이다.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역세권보다는 산책할 수 있는 오솔길이 근처에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편의시설이 가까운 도심도 좋지만, 가족들이 모여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국내 단독주택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전국에서 준공된 단독주택은 24만2006가구에 달한다. 아파트 숲에 질린 사람들이 출퇴근이 가능한 수도권 근교의 단독주택을 찾고 있다. 매매거래도 늘고 있다. 2019년 12만3762건이던 단독주택 매매거래는 지난해 15만5783건으로 증가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도 짚어봐야 한다. 덜컥 단독주택을 사서 실제 살아 보니 불편해 도망치듯 아파트로 돌아온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족을 위한 맞춤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단독주택의 매력은 너무나 크다.
단독주택 대박 노리면 '큰코다친다'
환금성 떨어져 되팔기 쉽지 않아…실거주로 접근해야
단독주택이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따져봐야 할 게 적지 않다. 먼저 단독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수요가 적어 환금성이 떨어지고 시세 상승폭이 작다.

단독주택은 집을 짓는 사람의 취향을 반영한 건물이기 때문에 아파트처럼 거래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 편이다. 수도권 외곽에 있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수요층도 한정적이다. 직장, 자녀 교육 등으로 인해 도심에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거리가 먼 전원형 단독주택이 부담스럽다면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장점을 결합한 블록형 단독주택을 대안으로 고려해볼 만하다.

단독주택은 시세 차익을 노리기보다 실거주 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단독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투자 가치가 떨어진다”며 “무리한 대출 등으로 사는 건 금물”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공사비를 들여 단독주택을 짓는 것도 피하는 게 좋다. 김경래 OK시골 사장은 “땅값이 싼 지역에서 많은 돈을 들여 크고 화려한 집을 지은 집주인들이 결국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후회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했다.

오래된 단독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을 할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헌 집을 새 집처럼 고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늘고 있지만 리모델링 방법과 업체 선정, 합리적 비용 책정 등이 쉽지 않아서다. 막상 공사를 시작하면 새 집을 사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기도 한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용적률 등을 확인해 불법 증축이 아닌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판교에 2층짜리 단독주택 지은 이정민 씨
"예쁜 집 찾아 온동네 발품…꿈의 집 현실로 그려냈죠"

“주말 아침이면 남편과 정원 텃밭에 상추와 고추를 심습니다. 점심에는 옥상 테이블에서 온 가족이 도시락을 먹고요. 아파트에 살 때는 못 누리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에요.”

2018년 6월 경기 성남 판교에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 입주한 이정민 씨(사진)는 단독주택의 매력을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1년6개월의 기다림 끝에 완성한 단독주택에 들어갔을 땐 세 번째 자식을 얻은 것처럼 뿌듯했다”며 “빨간 벽돌로 집을 지어 ‘붉은 벽돌집’이라는 애칭도 붙였다”고 말했다.

이씨의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은 어린 시절부터 있었다. 그는 “중학교 입학 이후부터 계속 아파트에 살았지만 자기만의 개성이 반영된 단독주택에 자꾸 눈길이 갔다”며 “틈날 때마다 삼청동, 부암동 등에 있는 예쁜 단독주택을 구경 다니는 게 취미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남편과 상의해 2017년 판교 단독주택 부지를 매입했다.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꿈의 집’을 짓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다. 판교에 있는 단독주택 수백 가구를 직접 찾아가 장단점 등을 파악했다. 설계, 시공과 관련한 책도 찾아 읽었다. 그는 “판교에 있는 단독주택은 사진만 봐도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안다”며 “남향집, 붉은 벽돌벽 등 10개 항목으로 정리한 기획서를 직접 써서 건축가에게 전달한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집안 구석구석 이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가장 신경 쓴 공간은 옥상과 정원이다. 야외 공간을 충분히 쓰기 위해 옥상을 넓게 설계하고 작은 테이블을 설치했다. 정원에는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그는 “첫 집들이 때 지인 20여 명을 초대해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고 했다.

아파트에 비해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자체 생산한 전기를 썼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파트에 살 때는 겨울철 한 달에 50만원가량의 관리·유지비를 냈지만 여기서는 20만원 수준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야외 활동이 어려워지자 단독주택에 사는 재미가 더욱 커졌다. 이씨는 “블루투스 마이크를 사서 노래방 분위기를 내거나 텃밭에서 가꾼 작물로 된장찌개를 끓여 야외에서 식사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했다.

그는 “단독주택은 ‘넓고 큰 집’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단독주택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며 “단독주택에 살아 보니 집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힐링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윤아영/장현주 기자 youngmon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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