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베테랑' 혼쭐낸 美 개미…'월가점령' 9년 만에 현실로

입력 2021-01-30 09:00   수정 2021-03-01 00:31


게임스톱(티커명 GME) 공매도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 시트론리서치가 공매도 리서치 중단을 선언했다. 시트론을 비롯한 미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들은 게임스톱을 두고 미국 개인투자자들과 치열한 공방을 이어왔다. 이들이 게임스톱 공매도 청산에 이어 공매도 중단까지 발표한 것은 사실상 ‘백기투항’을 선언한 의미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사태를 두고 ‘다윗이 승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공매도 명가' 시트론리서치의 백기투항
29일(현지시간) 시트론리시치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공매도 리서치를 중단하고, 지난 20년 동안이어진 공매도 보고서의 발간을 멈추겠다”며 “이제는 투자자들에게 수백%의 수익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유망주를 발굴하는데 집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트론리서치는 월가에 존재하는 다양한 투자전략 가운데서도 ‘공매도 리서치’라는 이색적인 전략을 사용해왔다. 이들은 먼저 리서치를 통해 기업의 비리나 회계부정, 거짓 등을 파해친다. 이후 이들 종목을 공매도하고, 공매도 사실과 그 근거를 공개적으로 알린다. 이를 통해 주가가 급락하면 시트론은 적절한 시점에 빌린 주식을 상환하며 숏 포지션을 청산한다.

시트론은 지난 20년 동안 십수개 이상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이와 같은 투자를 진행해왔는데, 국내에서 잘 알려진 사례는 SK텔레콤이 투자한 이스라엘의 의료기기 기업 나녹스다. 작년 8월 상장한 나녹스는 시트론이 기술력 부재 및 계약 사기 등의 의혹을 제기한 이후 주가가 60% 넘게 급락했다가 올들어서나 상장 초기 주가 수준을 회복했다.

유수의 상장사들을 상대로 승리해온 헤지펀드들을 파산의 위기로 몰아세운 것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결집한 미국 개인투자자들이다. 이들은 레딧의 ‘월스트리트베츠’에 모여 공매도 잔고가 높은 소수 종목들에 매수세를 집중시켰다. 공매도 잔고가 전체 유동주식수의 140%가 넘는 게임스톱은 최우선 대상이 됐다. 이에 연초 17달러 수준에서 거래되던 게임스톱 주식은 올해 고점(27일 347.51달러)까지 1914.55% 급등한다.

시트론리서치를 비롯해 게임스톱 주식을 되사와야하는 기관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멜빈캐피털은 전체 자산의 30%에 달하는 손실을 내고 다른 헤지펀드인 시타델 등으로부터 27억5000만달러의 긴급 자금을 공수해 겨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시트론 역시 게임스톱 공매도에 투자한 자금이 전액손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집단소송에서 정치권 개입까지…끝나지 않는 게임스톱 사태
백기선언에도 헤지펀드를 향한 미국 투자자들의 분노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개인투자자들이 주로 활용하는 증권사인 로빈후드와 이트레이드증권 등이 28일(현지시간) 게임스톱 거래를 전면 중단하자 개인들은 집단소송에 나섰다. 이들은 헤지펀드가 공매도 전략을 통해 개인들을 상대로 수익을 올릴 때 방관하던 증권사들이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자 헤지펀드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들의 목소리에 호응하고 나섰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테드 크루즈 등 여야를 막론하고 ‘거물급’ 의원들이 로빈후드의 거래 중단을 조사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28일 성명을 내고 “게임스톱 관련 거래를 포함해 로빈후드 내에서 이뤄진 활동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에서는 이번 두고 헤지펀드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자본시장의 패러다임이 뒤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헤지펀드들은 창의적인 투자기법과 전략으로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것을 넘어 때로는 거대 국가기관에 맞서는 힘을 보여왔다. 조지 소로스가 1990년 파운드화 공매도를 통해 영국 정부의 유럽환율조정장치(ERM) 탈퇴를 이끌어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반면 개인은 언제나 시장의 ‘언더독’ 취급을 받아왔다. 지난 2011년 ‘월가를 점거하라’ 시위는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지만, 실질적인 금융권 규제 조치로 이어지는데는 실패했다. 이를 두고 미국 블룸버그는 “게임스톱 사태는 월가 점령 운동의 메아리”라고 평가했다.
○국내 증권가도 '관심 집중'
국내 증권가에서도 게임스톱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전개된 ‘동학개미운동’ 이후 개인투자자는 한국 주식시장의 주류 세력으로 부상했는데, 이들은 미국 투자자들과 비견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공매도 투자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개인이 행동에 나서면 국내에서도 게임스톱 사례처럼 시장을 뒤흔드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코스닥시장에서는 공매도 잔액 상위 종목들을 중심으로 개인 매수세가 유입되고 있다”며 “펄어비스 등 일부 종목은 ‘한국의 게임스톱’이 될 것이라는 걱정 속에 자산운용사들이 급하게 매수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신진호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대표는 “게임스톱 사태는 월가 헤지펀드가 지난 50년간 쌓아올린 모든 행동 규범을 다시 판단하는 계기가 됐다”며 “전례없는 사태인만큼 금융투자업계와 주식시장에 어떤 여파가 미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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