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의 공간] 야구장이라는 무한 상상 공간

입력 2021-02-01 17:43   수정 2021-02-02 00:13


‘유통 공룡’ 이마트가 야구단 SK와이번스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야구팬들이 1주일째 술렁이고 있다. 이마트의 야구단 인수는 단지 응원하는 팀 이름이 달라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유통 공간 실험을 수년째 해온 이마트는 기존 야구장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서의 야구장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선 야구장을 경기장(stadium) 대신 공원(park)이라고 부른다. 단지 스포츠를 보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즐거움을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야구장이 삶을 담아내는 공간이 된 데는 긴 역사가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장은 현재 똑같은 곳이 하나도 없다. 도시가 발달하며 야구장 위치가 바뀌고, 필요와 환경에 따라 모양도 바뀌었다.
죽은 도시 살린 야구장의 혁신
야구는 원래 들판에서 하던 스포츠다. 타구가 외야수 사이를 빠져 나가면 홈런이라고 했다. 입장료가 생긴 이후 담장이 생겼고, 홈런이라는 정식 규칙도 생겼다. 1950년대 똑같은 형태로 미국 전역에 야구장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미국에선 ‘콘크리트 도넛’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현대식 야구장은 재난이 만들어낸 결과다. 보스턴 구단은 홈구장 사우스그라운드가 불에 다 타버리자 팬들이 찾아오기 쉽도록 시내에 새 구장을 짓기로 했다. 도심 속 비정형의 긴 땅 위에 비대칭의 구장을 세웠다. 경기장 밖에서 공짜로 야구를 보지 못하게 하고 주차장의 차를 보호하기 위해 높은 담장 ‘그린몬스터’도 만들었다. 보스턴의 자랑이자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구장 ‘펜웨이 파크’는 그렇게 탄생했다.

1990년대 야구장은 또 한 번 진화했다. 볼티모어의 홈구장인 캠던 야드 오리올 파크는 옛 창고 건물을 야구장 한쪽 벽으로 삼아 ‘레트로 야구장’을 세웠다. 1905년 완공된 철도회사의 창고를 헐지 않고 야구장 벽으로 만든 것.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구장에 담아냈다. 오리올 파크는 조선과 정유 등 오래된 공업도시로서의 명성을 잃어가던 볼티모어에 핵심 집객 시설이 됐다.

야구장이라는 공간의 다양성과 자유로움 때문일까. 야구는 다른 스포츠 종목과 달리 20~30대를 중심으로 성별과 상관없이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프로야구 관중 수는 10년 전부터 꾸준히 늘어 연간 800만 명을 넘는다. 여성 팬 비중은 40%를 넘었다. 응원의 에너지, 승부의 희열과 별개로 야구에는 현대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담는 코드가 숨어 있다.
이마트 '네오 리테일' 성공할까
미국에선 이미 야구장이 도심으로 돌아가 대규모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하나가 되고, 주변 상권의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상업 플랫폼이 된 지 오래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1997년부터 쓰던 홈구장 터너필드를 20년 만에 트루이스트 파크로 옮겨 복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선보였다. ‘배터리 애틀랜타’라는 이름의 복합 상업시설이 탄생한 배경이다. 오리올 파크 외에도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일본 프로야구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도 도시 개발 사업 과정에서 야구장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했다.

야구장이라는 공간의 확장 가능성은 무한하다. 외야석 수영장에서 경기장을 바라보며 응원하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홈구장 체이스필드, 수족관과 수영장이 함께 있는 마이애미 말린스의 말린스파크, 맥주 양조장과 함께하는 덴버의 쿠어스필드 등이 그렇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화물항 부지에 짓고 있는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새 홈구장에는 야구장 외벽에 공원과 연결되는 거대한 녹지 언덕이 자리 잡는다. 주변엔 아파트, 오피스, 상점이 함께 들어선다. 야구팬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이 함께 즐기는 도심 속 공원이 되겠다는 목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저성장이라는 리테일의 위기 속에서 이마트가 야구장을 통한 ‘네오 리테일’ 공간을 제시할지 기대되는 이유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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