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노가리와 총알오징어

입력 2021-02-04 17:52   수정 2021-02-05 00:16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다.” “내리 3년 흉년에도 씨종자는 지킨다.” 씨앗의 중요성을 강조한 우리 속담이다. 옛사람들은 전쟁 통에도 씨종자를 보따리에 따로 챙겨 피란을 갔다. 종자가 없으면 수확도 없기 때문이다. 농사 씨앗뿐 아니라 수산 종자도 마찬가지다. 알 낳을 물고기가 없어지면 어족 자체가 멸종된다.

우리는 명태 멸종 사태를 이미 겪었다. 1940년대에 연간 27만여t까지 잡히던 국산 명태가 1970년대 6만여t으로 줄었다. 2000년부터 1000t 아래로 떨어졌고 2008년 이후로는 아예 안 잡힌다.

명태가 사라진 것은 수온 변화 등 기후 영향도 있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남획이다. 1971년 노가리(명태 새끼) 어획이 허용된 뒤 국산 명태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중국 어선들의 저인망식 싹쓸이에 발을 구르던 어민들이 이에 뒤질세라 어린 명태를 마구 잡아들였다. 유통업자들은 “명태 새끼와 노가리는 다른 종류의 물고기”라고 우겼다.

오징어의 비극도 이와 같다. 2000년대 초 연간 20만t이던 오징어 어획량은 지난해 5만6000t으로 급감했다. 값이 뛰어 ‘금(金)징어’가 됐다. 이 또한 남획으로 인한 어족 고갈 때문이었다. 전보다 덜 잡히니 부화한 지 3~6개월밖에 안 돼 산란 기능을 갖추지 못한 새끼 오징어까지 쌍끌이로 긁어올렸다. 이는 ‘총알오징어’라는 이름으로 팔렸다.

정부가 2016년부터 12㎝ 이하 오징어 포획을 금지했지만 단속이 쉽지 않았다. ‘12㎝ 이하 오징어가 선박 한 척 전체 어획량의 20% 이하일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 탓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알도 낳지 않은 새끼를 마구 잡으니 씨가 마를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는 해양관리협회(MSC) 기준을 적용해 어업과 유통 과정을 관리한다. 미국 월마트와 영국 테스코, 프랑스 카르푸, 일본 이온 등 대형 유통기업들이 이를 적용하고 있다.

국내 유통업계도 이달 들어 총알오징어 등 새끼 생선 판매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제2 노가리’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 역시 올해 오징어 포획금지 기준을 기존 12㎝에서 15㎝로 강화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어업이든 농업이든 파종할 씨앗이 없으면 거둘 게 없다. 기초과학이 중요한 기술산업이나 국가 경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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