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종말론'에 관한 갑론을박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1-02-05 09:03   수정 2021-02-05 09:41

CGO(chief growth officer, 최고성장책임자)라는 명칭이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19년께다. 존슨앤존슨은 그 해 6월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짜기로 했다며 CGO라는 새로운 ‘C-레벨’을 만들었다. 흥미롭게도 존슨앤존슨은 CMO(최고 마케팅 책임자)라는 타이틀을 없애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케팅이 ‘성장 책임자’의 소관으로 들어간다는 얘기였다.

이 같은 흐름은 코카콜라, 하얏트(Hyatt), 리프트(Lyft) 등 굴지의 글로벌 소비재 기업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조차 CMO를 대체하는 CGO의 등장에 관해 갑론을박이 많았다. “명칭만 바꿨을 뿐”이란 비아냥이 이어졌다.

글로벌 마케팅 업계에선 이런 변화를 ‘CMO의 종말’로 여기며 반발하는 기류가 역력했다. 2019년까지만해도 대부분의 마케팅 전문가들은 “CGO가 얼마나 잘 하는 지 지켜보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작년 초부터 전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그간의 회의론을 단번에 잠재웠다. CGO의 등장은 마케팅의 종말이 아니라 마케팅 영역의 확장이라는 의미에서다. 마케팅플랫폼 기업인 블루쉬프트의 조쉬 프란시아(그 역시 CGO다)는 CGO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기업의 여러 조직과 기능들을 교차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도록 요구받고 있고, 이를 위해서 사실상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간 기업에서 수행하는 마케팅은 인체에 비유하면, 기업의 얼굴을 환하게 밝혀져주는 화장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마케터(marketer)’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을 의심하는 이들과 싸워야했다. 마케팅 활동이 기업의 매출과 수익에 얼마나 기여했나를 증명하기 위한 싸움에서 마케터들은 대체로 마케팅의 언어로 맞섰다. 인지, 선호, 개입 등과 같은 용어들이다. 마케팅의 효과를 정량적으로 설명하라는 이들을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면서 마케터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마케터들을 수세, 아니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할 만큼 절벽으로 몰아세웠다. 마케팅 환경 자체가 급변했다. 이벤트, 캠페인 등 대면을 기본으로 한 그간의 마케팅 기법들이 무용지물이 됐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로선 해외 마케팅에 애로를 겪고 있다. 제일기획, 이노션 같은 종합광고대행사들이 해외에 내보낼 광고를 만들면서 화상을 통한 원격 촬영으로 꾸역꾸역 예정됐던 스케줄을 소화하긴 했지만, 이 같은 방식이 지속될 것이라 믿는 이들은 없다. 요즘 국내에서도 한창 유행하는 ‘래플 마케팅’도 줄세우기 같은 대면 마케팅이 불가능해지면서 나타난 임기응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CMO는 사라지고, 마케팅은 종말을 고하는 것인가.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마케팅이 진가를 발휘할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기업의 본질적인 성장과 연계한 마케팅 영역의 확장 말이다. C-레벨을 뭐라고 명명할 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코로나19가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 비대면 혹은 디지털 마케팅의 필요성 증대를 꼽을 수 있다. 기업들은 마케팅의 정의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완성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알리는 이벤트나 캠페인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마케팅의 영역은 시쳇말로 ‘엔드 투 엔드(end to end)’로 확대됐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복잡해진 소비자 행동양식, 유통 시장의 변화로 인해 마케팅의 영역이 소비자의 구매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접점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마케팅 ‘뉴노멀’이다.

지난해 10월 아모레퍼시픽이 라네즈의 신제품을 와디즈를 통해 공개한 것은 기업들의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와디즈는 통상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등 브랜드 파워가 약한 업체들이 펀딩(자금수혈)과 구전 효과를 얻기 위해 활용하는 플랫폼이다. 과거의 아모레퍼시픽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인 셈이다. 사드 사태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설화수라는 독보적인 브랜드가 어느새 낡은 화장품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 아모레퍼시픽을 디지털 마케팅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유통업체들도 마케팅을 기업의 성장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잠재적인 소비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것부터가 마케팅의 출발점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차를 몰고 가족과 근교로 여행을 떠나는 중년 남성인 지, 외견상 ‘골드 미스’로 우아하게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대화상대가 필요한 여성인 지 등을 가늠할 수 있어야 타깃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와서 어떤 걸 클릭하고, 쇼핑 호스트의 어떤 멘트에 반응하며, 배송은 빠른 걸 원하는 지 아니면 원하는 시간에 문 앞에 놓이길 원하는 지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걸 앞서가는 글로벌 유통업체들은 일찌감치 감지했다.

마케팅의 외연 못지 않게 속도도 중요하다. 나이키 등이 새로운 유통 영역으로 확장 중인 온디맨드(on-demand)가 대표적인 사례다. MZ세대들은 판에 박힌 듯 찍혀 나오는 상품보다는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다품종 소량생산 제품에 더 만족감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계획하는 마케팅 기법으로는 빠른 트렌드 속도를 잡기가 어렵다. 나이키는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축소하고, 웹과 앱을 통해 온디맨드 제품을 대거 출시한 덕분에 지난해 4분기 디지털 매출을 전년 대비 84% 끌어올렸다. 조만간 디지털 매출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어설 것이라는 게 나이키의 예상이다.

또 하나 중요한 터닝 포인트는 기술의 발전이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할 수 있는 ‘테크 기업’의 등장은 마케팅의 영역을 확장하게 만든 핵심이다. 이제 글로벌 마케터들은 소비자에 관한 ‘처음부터 끝까지’를 데이터로 정량화할 수 있게 됐고, 자신들의 다양한 마케팅 전략들이 기업의 매출, 이익, 점유율 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 지를 계량화할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된 것이다.

국내에선 아직 CGO를 도입한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CGO를 최고게임(Game)책임자, 최고환경(Green)책임자, 최고글로벌(Global)책임자 등의 용어로 혼재해서 사용하고 있다. 테크와 결합한 신개념 마케팅 영역을 누가 먼저 개척할 지 지켜볼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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