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아픈 과거 아르헨티나 '포퓰리즘의 비극'…이민자 몰리던 부자국가는 왜 '상습 부도국가' 됐나

입력 2021-02-08 09:00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는 엄마를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 출신 마르코의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갔던 부자 나라는 아르헨티나였다. 지금은 쉽게 이해가 안 가는 설정이지만 20세기 초반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은 프랑스, 독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수백만 명의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왔다. 마르코의 엄마도 그중 하나였던 셈이다.

영화 ‘두 교황’ 속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훗날 교황 프란치스코, 조너선 프라이스 분)가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직장생활을 하던 1950년대만 해도 아르헨티나의 경제사정은 밝아 보인다. 하지만 1970년대 군부 독재가 시작되고, ‘더러운 전쟁’이 자행되는 등 상황은 급반전된다. 부국의 상징이던 아르헨티나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악의 스캔들 ‘바키리크스’
2019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두 교황은 여러 측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음악 취향에서부터 성서에 대한 해석까지 모든 게 다른 두 성직자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대화하는 모습이 토론과 타협은 사라진 채 극단으로 흐르는 우리 현실에서 깊은 울림을 줬다.

영화는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세상을 떠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교황이 서거하면 전 세계 추기경들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콘클라베’를 연다. 외부와 단절된 채 새로운 교황을 뽑는 의식이다. 참석한 전원이 후보이자 투표자다. 외부에서는 굴뚝 연기의 색으로 투표 결과를 알 수 있다. 당시 선거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등 개혁파와 요제프 알로이스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 앤서니 홉킨스 분) 등 보수파의 대결로 관심이 컸다. 두 번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과반을 득표한 추기경이 없다는 뜻이었다.

세 번째 연기는 흰색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은 주자는 보수적 원칙주의자로 꼽히는 베네딕토 16세였다. 당시 언론은 이를 두고 ‘보수파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인기 없는 교황이었다. 동성애, 여성사제, 이혼 등 개혁 과제에 대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 교황의 비서이던 파울로 가브리엘이 교황청 기밀문서를 빼돌린 ‘바키리크스’가 터지면서 교황은 위기에 처한다. 기밀문서에는 고위 성직자들이 외부 업체와의 계약에서 가격을 부풀리는 등 비리를 저지르고, 이 과정에서 바티칸 은행이 돈세탁을 해줬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명 인사에게 교황을 만나게 해주면서 돈을 받았다는 것도 있었다.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비난의 화살은 교황에게까지 쏠렸다.
하느님의 뜻과 멀어진 교회
이 같은 비리는 ‘주인-대리인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경제학에서 주인 대리인 문제는 대리인이 주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경영자, 국민보다 자신이 속한 공무원 조직 등을 위해 일하는 관료 같은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영화에서는 바티칸의 성직자들이 신도들,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의 뜻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겠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할 본분을 잊고 돈을 우상으로 섬겼기 때문이다.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을 바티칸으로 불러 교회 개혁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사사건건 자신과 생각이 다른 것을 확인하면서도 베네딕토 16세는 “교회는 변화가 필요하고 당신(베르고글리오)은 변화일 수 있다”며 자신을 이을 교황이 돼달라고 제안한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거절한다.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그는 1970년대 더러운 전쟁이 벌어지던 당시 “예수회 신부들을 지키기 위해 군부와 타협했었다”고 고백한다.
더러운 전쟁을 가져온 정부실패
더러운 전쟁은 아르헨티나에서 1970년대 집권한 군부 세력이 자행한 학살을 말한다. 당시 3만 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러운 전쟁의 시작에는 1940~1950년대 아르헨티나를 휩쓴 ‘페론주의’가 있다.

페론주의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대통령이던 후안 페론은 국가 주도로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민간부문의 역할을 줄였다. 철도·항만 등을 국유화했고 산업은행을 설치했다.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며 교역을 통제했다.

동시에 노동자의 임금을 크게 올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1947년에서 1952년 사이 25% 늘어났다. 동시에 단위 생산 노동비용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발전이 더뎠던 산업에 악영향을 미쳤다.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 yykang@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기업 경영자는 주주(shareholder)의 이익을 더 중시해야 할까, 직원이나 고객 등 회사와 관계를 맺는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의 이익을 더 중시해야 할까.

② 포퓰리즘 정책이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추락시키고 있음에도 2019년 대통령선거에서 좌파 후보가 승리하는 등 여전히 페론주의가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③ 전세계 가톨릭 역사상 한국은 선교사의 노력 없이 교인들이 자생적으로 받아들여 널리 퍼진 유일한 사례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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