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악어의 입' 경고한 기재부, 여당 앞에서 제대로 해보라

입력 2021-02-05 17:41   수정 2021-02-06 00:04

안일환 기획재정부 2차관이 공공기관 투자집행 점검회의에서 “악어 입 그래프를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한 발언이 모처럼 눈길을 끈다. ‘지금은 곳간 걱정 말고 돈 풀 때’라는 선심성 주장이 난무하는 데 대해 따끔한 경고를 날린 모양새다. 여당이 4차 재난지원금용 추경 편성을 압박하는 와중이라 예산·세제를 총괄하는 기재부 2차관의 ‘반기’는 청량감을 준다.

‘악어 입 그래프’는 재정지출이 늘고 세수는 줄어 나라살림이 구조적 악순환으로 빠져드는 현상이다. 1990년대를 전후한 일본의 재정지출과 세입 구조를 그려보면 악어가 입을 쩍 벌린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용어다. 안 차관의 경고는 며칠 전 “재정지출의 기본원칙은 다다익선보다 적재적소”라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홍 부총리는 여권의 돈풀기 압박에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며 반발했다가 사퇴 압박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 차관이 ‘재정지출의 불가역성’을 경고한 것은 기재부가 포퓰리즘에 단일대오로 맞설 것임을 시사하는 신호로 보여 묘한 안도감을 준다.

지금 한국은 ‘악어 입’의 원조인 일본의 수십 년 ‘정부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복지를 크게 확대한 일본에선 1990년대 들어 경제거품이 꺼지자 악어 입 그래프가 나타났고, 그 결과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긴 터널이었다. 한국도 국세수입이 예산에 1조3000억원 미달한 2019년을 기점으로 악어 입으로 들어섰다는 지적이 많다.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퍼주기 경쟁이 가열되고 있어 연말이면 나랏빚이 100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점이 위기감을 더한다.

기재부의 경고가 만시지탄이란 아쉬움도 크다. 여권 요구대로 4차 재난지원금용 적자국채를 20조원만 발행해도 국가부채비율이 GDP 대비 48%대로 뛴다. 1990년대 초반 40%대로 양호했던 일본의 국가부채비율이 불과 5년여 만에 100%로 치솟은 악몽이 연상된다. 보다 책임 있는 자세도 절실하다. 기재부는 지난해 만드나 마나 한 느슨한 재정준칙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홍 부총리 역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식으로 반발한 뒤 언제나 꼬리를 내리며 ‘8전8퇴’했다.

안 차관은 “재정관리의 소명에 대해 다시 한번 다짐하고자 한다”고 했다. 외곽에서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거대여당 앞에서 당당하고 진지한 자세로 악어 입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곳간지기의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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