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의 용광로는 365일 붉은 색채를 뿜어낸다. 완전한 탈바꿈을 위해, 흐르는 쇳물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고도화된 인공지능(AI)은 이 펄펄 끓는 고로(高爐)에 ‘뇌’를 심어줬다. 얼핏, 무관해 보이는 AI와 철강의 만남이 세상에 없는 자동화 기술을 만들어냈다. 지난 3일 경북 포항 포항제철소에서 만난 김기수 포스코 공정엔지니어링연구소장(56)은 “AI로 제조 현장의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 제조업은 사람이든, AI든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이 이끄는 공정엔지니어링연구소는 포스코의 연구개발(R&D)을 책임지는 심장이다. 작년 정식 출범한 ‘AI 연구그룹’도 이곳에 소속돼 있다. 약 50명의 연구원이 김 소장과 함께하고 있다.
포스코의 AI 역사는 짧지 않다. 이미 1990년대 초에 AI 도입을 검토한 적이 있다. AI 진화사에서 ‘제2의 붐’으로 분류되는 시기다. 김 소장은 “당시 기술적 이해는 마쳤지만, 방대한 제조 데이터를 처리할 만한 하드웨어가 없다 보니 도입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재도전 기회를 잡은 게 2016년. 그해 산업계를 강타한 ‘알파고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설욕에 나선 김 소장과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산업공학 등 서로 다른 분야를 전공한 현장형 AI 전문가들이 뭉쳤다. 시간이 흘러 똑똑해진 사물인터넷 장비들도 힘을 보탰다.
김 소장은 “자동화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왔기 때문에 내부에 이미 자생적인 잠재력과 경험이 있었다”며 “외부의 소프트웨어 기반 AI 전문가보다는,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내부 인력과 함께 시범 사업에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연구 착수 2년 만인 2018년, 포항제철소 2고로는 세계 첫 스마트 고로로 변신했다. 기존보다 연간 8만5000t의 용선(쇳물)을 추가로 뿜어내는 등 5% 상당의 생산성을 개선했다. 회의감을 보였던 베테랑 현장 조업자들은 AI를 운용하고 고도화하는 전문가로 다시 태어났다.
AI가 가져온 변화는 컸다. 노열(내부 온도)과 송풍량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스스로 고로를 제어해내며 새로운 공정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멕시코, 인도 등 해외 14개 공장 도금공정에 AI를 도입한 것도 성공적이란 평가다. 강판 표면에 아연 등의 소재를 입히는 작업이 도금공장의 핵심 공정. 본사 전문 인력의 현장 방문이 필수다. 김 소장은 “코로나19로 해외 출장을 나갈 수가 없었는데, AI가 각 도금공장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도금량 수치를 개선해내며 오히려 효율을 끌어올렸다”고 전했다. 포스코는 내년에 광양 4고로를 다섯 번째 스마트 고로로 바꿀 예정이다.
포스코가 올해 중점 추진 과제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개념을 꺼내든 것도 이 때문이다. 1차적으로 각 공정에 따로 적용되고 있는 AI 시스템을 통합 관리하는 ‘관통형 AI’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소장은 앞으로 AI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들과의 네트워킹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그는 “2018년 방문한 엔비디아와 구글에서 앞선 기술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며 “글로벌 협력을 통해 해외 업체들의 전문적 리소스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 김기수 소장은…
△1965년생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포항공과대 재료금속공학 석사, 영국 셰필드대 기계공학 박사
△포스코 기술연구원 박판연구그룹장
△포스코 연구기획그룹장
△포스코 기술연구원 ES실장
△(現)포스코 기술연구원 공정엔지니어링연구소장
포항=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