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70%가 공모가 뻥튀기…개미들 "손실 볼라" [전예진의 공모주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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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2-11 08:00   수정 2021-02-11 14:18

상장사 70%가 공모가 뻥튀기…개미들 "손실 볼라" [전예진의 공모주 투자]



올해 상장하는 회사 13곳 중 9곳이 희망가격보다 공모가를 올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70%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인데요. 이쯤되면 너도나도 가격을 올리는 단계를 넘어 공모가를 높이지 않으면 안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올해 첫 공모주인 엔비티를 시작으로 핑거 모비릭스 솔루엠 레인보우로보틱스 와이더플래닛 아이퀘스트 피에이치테크 유일에너테크 등이 줄줄이 공모가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지난 9일까지 수요예측을 받은 AI(인공지능) 영상분석기업 씨이랩도 역시 공모가격을 3만5000원으로 확정했습니다. 희망공모가격은 2만3000~3만1000원이었으니, 하단 기준 50% 가량 가격을 올린 겁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상단을 뚫었다'고 말합니다. 발행사가 제시한 공모가 범위의 상한선을 넘어섰다는 것을 다소 과격하게 이르는 말이죠. '뚫는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가격 저항선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내건 가격은 무시하고 비싸게 팔겠다고 번복한 것이니 투자자들의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죠.

그래서 지금까지는 희망가격 이상으로 공모가를 높이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지난해 최고의 흥행을 거둔 SK바이오팜, 카카오게임즈,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모두 공모가 밴드를 지킨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대기업은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인지도를 고려해 수요예측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웬만해선 공모가를 올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해는 다들 공모가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일차적 원인은 수요예측 결과가 지나치게 좋기 때문입니다. 수요예측이란, 회사와 주관사가 희망가격 범위, 즉 공모가 밴드를 제시하면 기관 투자가들이 원하는 가격과 수량을 적어내는 절차를 말합니다. 앞서 언급한 씨이랩의 경우 수요예측에 들어온 1412건 중 공모가 상단을 초과한 가격을 써낸 개수가 1326건에 달했습니다. 상단인 3만1000원을 써낸 건수는 25건에 불과했죠. 비싸게 사겠다는 기관들이 줄을 섰는데 가격을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올해 수요예측을 진행한 기업들의 결과가 대부분 이랬습니다. 그렇다면 기관들은 왜 경쟁적으로 상단을 넘어선 가격을 써낸 걸까요? 꼭 잡아야하는 매력적인 공모주가 많아서? 아니면 저평가돼있다고 판단해서?

업계에서는 "이게 다 명신산업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작년에 테슬라 수혜주로 주목받으면서 '대박'을 낸 자동차 부품회사말입니다. 내막을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지난해 명신산업이 수요예측을 받을 때, 기관 투자가들은 관행대로 공모가 밴드의 최상단을 써냈습니다. 당시 테슬라 주가가 치솟던 때였고 테슬라에 납품하는 명신산업은 공모가가 매우 저렴하게 책정돼있어 기관들의 쟁탈전이 치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명신산업은 수요예측에서 대흥행을 거뒀고 공모가를 최상단인 5800원보다 높은 6500원으로 올렸습니다. (그래도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었죠.) 상장 주관사는 기관들이 수요예측에서 최상단의 가격을 써낼 경우 두 가지 선택지를 주는데요. 공모가가 희망가격보다 높아질 경우 공모주를 받을 의향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예'라고 대답했다면 최상단인 5800원을 써내도 6500원에 공모주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오'라고 하면 5800원을 써낸 투자자들은 배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명신산업은 수요예측 열기가 워낙 뜨거웠던 탓인지 이 조건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공동대표 주관사인 미래에셋대우는 '예'라고 답한 기관들에게 공모주를 배정하지 않았는데요. 일부러 주지 않았는지, 줄 수 없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배정은 주관사의 재량에 맡기기 때문에 딴지를 걸 수 없습니다. 어쨋든 명신산업은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의 10배 가까이 치솟았고 공모가 상단을 쓰고서도 공모주를 배정받지 못한 기관들은 속이 쓰리면서도 억울했죠.

이 사건으로 기관 투자자들은 무조건 수요예측에서 공모가 상단을 넘어선 가격을 써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나 배정에서 제외될까 전전긍긍하느니 마음 편하게 높게 지르는게 낫다고 생각한 겁니다. 처음에는 '설마 공모가를 올리겠어?'라는 생각으로 가격을 높게 썼을 겁니다. 그런데 다들 상단을 초과해서 가격을 써내다보니 회사와 주관사는 이것을 '허수'가 아니라 진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줄줄이 공모가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됐습니다.

이제는 최상단보다 높여서 내는 게 일종의 트렌드가 되어버렸습니다. 공모가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런 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증권사는 예상을 웃도는 수요예측 결과표를 받아들고 신이 나서 공모가를 높이고 수수료 수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고공행진하는 주가와 공모주 투자 열풍 등 여러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지면서 공모가를 높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희망공모가격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최상단으로 제시한 가격이 결국 하한선이 되는 상황이니까요. 공모가 상향 조정은 투자자들과 약속을 깨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대로 올리고 내릴 수 있는 것이라면 가격 범위를 제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수요예측이 잘못되어 공모가가 높아지면 그 피해는 일반 청약자들에게까지 전가됩니다. 공모주 투자자라면 공모가가 어떻게 책정되는지, 왜 이렇게 책정됐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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