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개복치는 너무 크고, 개복치니까.”
“개복치가 귀여워?”(평소에 귀여운 걸 좋아함)
“아니. 그런데 꼭 잡고싶어.”
6살난 딸이 모동숲을 하다가 이런 요구를 해왔습니다. 미션은 '개복치 잡기' 입니다. 개복치는 캐릭터를 가릴 정도로 크다고 합니다.(유튜브에서 개복치를 잡는 영상을 본 모양입니다.) 귀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복치는 개복치니 꼭 잡아야 한다는 단순명료한 논리입니다.
개복치를 낚을 수 있는 닌텐도의 ‘동물의 숲’ 시리즈는 ‘힐링 게임’의 대명사입니다. 저는 지난해 초 ‘모여봐요 동물의 숲’ 타이틀을 발매 직후 구매했습니다. 모동숲 팩 대란도 빗켜났습니다.
언제부턴가 딸이 모동숲을 하게된 뒤로 제 마을은 ‘X판’이 됐습니다. 남들처럼 마을을 재밌게 꾸미는 건 불가능합니다. ‘공사’ 기능을 켤줄 알게된 뒤론 마을에 구불구불한 미로가 생겼습니다. 마을에 이사온 캐릭터들을 한 곳에 가둬놓기 일쑤입니다. 불편합니다. 이동을 하려면 엄청 돌아가야 합니다. 인벤토리칸은 꽉 차있고, 온갖 잡동사니가 맵에 뒹굽니다. 한번 손에 넣은 물고기, 옷 등을 버리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중에 개복치를 잡으라는 미션이 떨어졌습니다. 잡으려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개복치를 잡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복치가 출현하는 시간대로 게임기의 시점을 돌린다 → 모래사장에서 물을 뿜는 곳을 찾는다 → 삽으로 파 바지락을 잡는다 → 바지락을 미끼로 만든다 → 미끼를 물가에 던진다 → 그림자가 가장 큰 물고기가 나오면 뾰족한 지느러미가 보이는 질 살핀다 → 낚시대를 던진다 → 개복치를 낚는다
귀찮고도 지난한 과정입니다. 물고기가 보이면 낚시대를 던지고, 안보이면 말고 하던 저로선 지겨운 과정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잡으라는 걸. 남은 인벤토리는 두 칸. 바지락 두마리를 잡아 미끼를 던지고 뾰족한 지느러미가 나오면 낚시대를 던지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2도 대표적입니다. 메피스토라는 보스를 (비교적 수월하게 잡을 수 있습니다.) 잡으면 고급 아이템이 떨어집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밖에 나가면서 초등학교 6학년인 동생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메피 20마리만 잡아봐. 떨어진 아이템은 버리지 말고.” 디아블로 세계관에서 메피스토는 악마입니다. 아주 불쌍한 악마임에 분명합니다. 목적 지향적인 국내 게이머들에게 수 없이 사냥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도 해본적이 있습니다. ‘아 내가 메피 잡을 시간에 공부를 했더라면’ 물론 그럴일이 잘 없는 걸 압니다. 메피를 안 잡았다면 그 시간동안 공부 대신 뭔가를 했겠죠.
게임은 노력하고, 극복하고, 달성하는 과정의 반복입니다. 게임의 즐거움을 과거의 ‘사냥본능’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과정이 즐거울지, 결과가 즐거울지를 선택하는 건 전적으로 게이머의 몫입니다.
결국 전 휴일 3시간을 보내며 개복치 낚기에 실패했습니다. (커다란 상어 한 마리와 빨판상어를 새로 낚았습니다.) 딸은 ‘아직도 못 잡았냐’고 타박을 하더니, 울기까지 하더군요. “아빠가 개복치를 안잡아준다”고 엄마에게 이르기도 했습니다. 힐링을 해보려던 제 모동숲 계획은 딸의 무리한 미션 덕분에 틀어졌습니다. 당분간은 개복치를 잡는 데 올인해야 할것 같습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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