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U의 적극적 움직임은 역내 반도체 생산시설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EU에서 2019년 기준 매출이 100억달러를 넘는 반도체 기업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만드는 ASML이 유일하다.
유럽에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스위스 ST마이크로 등 차량용 반도체와 아날로그반도체 등에 강점을 지닌 기업이 없진 않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생산 능력이 충분하지 않아 주로 대만 TSMC 등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에 상당한 물량의 생산을 맡기고 있다.
미국 반도체업체들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지원해달라는 요구 서한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인텔, 퀄컴, AMD 등 미국 반도체 회사 대표(CEO) 21명은 최근 “보조금이나 세액 공제 등의 형태로 반도체 생산의 인센티브를 위한 재정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서한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글로벌 반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37%에서 최근 12%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쏟아지는 ‘러브콜’에도 삼성전자는 마냥 편한 상황은 아니다. 해외에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면 ‘과잉·중복 투자’ 우려가 커질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현재 경기 평택에 1공장(P1)을 완공했고, 2공장(P2)엔 최첨단 파운드리와 메모리반도체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미국이나 EU에 공장을 지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주문이 들어올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3년 내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M&A)하겠다고 공언한 삼성전자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순현금은 104조원인데 20조원 이상을 투자해 해외 공장을 지으면 그만큼 M&A에 사용할 ‘실탄’이 줄어든다.
자국 반도체산업을 보호하려는 흐름이 강해지면 삼성전자의 M&A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주요 M&A 대상으로 NXP, ST마이크로, 인피니언 등이 거론된다. ‘아시아 반도체 기업’을 경계하고 있는 각국 정부가 기업결합심사에서 ‘퇴짜’를 놓으면 M&A가 지연되거나 무산될 수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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