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코리빙' 한국선 못하는 이유

입력 2021-02-15 17:57   수정 2021-04-20 17:28

서울 안암동에 있는 ‘안암생활’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관광호텔을 사들여 주거용으로 개조한 청년 맞춤형 공유주택이다. 122가구의 원룸형 주택(전용 13~17㎡)으로 이뤄져 있다. 침실과 욕실 등 개인 공간은 따로, 주방 독서실 등은 공유한다. 월세 27만~35만원(보증금 100만원)으로, 주변 시세의 50% 이하 수준이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스타트업이 비슷한 개념의 청년 공유주택인 ‘코리빙(Co-living) 하우스 사업’을 추진했다. 욕실(화장실)을 3명이 함께 쓰는 룸(3.5평)과 욕실이 딸린 방(4.3평) 등 다양한 주거공간이 있는 주택을 신축할 계획이었다. 플랫폼 스타트업과 협업해 퍼스널 모빌리티, 차량공유, 로봇 딜리버리,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보안관리, 커뮤니티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구상이었다.

인허가를 받기 위해 담당부처를 찾아갔더니 코리빙 하우스는 ‘현행법상 주택으로 볼 수 없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건축법상 공동주택은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기숙사로 정해져 있을 뿐 코리빙(공유주거)은 법령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해 임시허가라도 받아보려 했지만 ‘건축물은 안 된다’고 했다.

결국 건축법상 기준(원룸+다세대주택)을 맞춰 도시형생활주택을 지어야 했고, 건축비와 임대료가 당초 계획보다 올라갔다. 건축법에서 원룸은 1인당 13.2㎡(4평) 이상의 방에 화장실, 주방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다세대주택은 주차장을 둬야 한다.

가구별로 다양한 평면을 구성해 개인 선호에 따른 맞춤식 주거공간을 제공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차량을 소유하지 않는 입주자만을 대상으로 하려던 구상도 없던 일이 됐다. 법령으로 정해진 것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민간 업체의 창의적 주거 솔루션 도입을 막은 것이다. 청년주거 문제가 심각한 세계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코리빙 사업은 급성장 중이다. 미국 유럽 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코리빙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투자유치에 성공하고 있다.

민간 업체는 LH처럼 비어 있는 호텔을 매입해 공유주택으로 바꿀 수도 없다. 공공주택특별법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LH 등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민간 업체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어서다. 역시 포지티브 규제다.

예전엔 없던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 분야일수록 포지티브 규제는 기업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낡은 법·제도의 수혜자인 기득권 세력이 규제의 수호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스타트업이 공들여 개발한 혁신 기술과 서비스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A사는 로봇기술과 IoT를 결합해 ‘스마트 원격재활 솔루션’을 개발했다. 재활운동 기기와 원격재활 플랫폼(앱)을 제공해 환자들이 집에서 손쉽게 재활운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비대면 의료를 금지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서비스를 할 수 없다.

B사는 소비자가 시력, 색맹, 난시 등 자신의 눈 상태를 측정·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고도 시장에 내놓지 못했다. 이 회사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가상현실(VR)기기도 의료기기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규제 당국의 해석 탓이다. C사는 주차장 내 카메라가 전기차 충전구를 인식해 자동으로 충전하는 ‘무인충전 로봇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공개된 장소에 영상정보 처리가 가능한 카메라를 설치할 수 없다’는 규제에 걸려 사업을 접어야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누가 먼저 새로운 성장 원천과 고용 창출 기회를 발굴해 내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고 봐야 한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스타트업들이 맘 놓고 뛰어놀 수 있는 판을 깔아줘야 하는 이유다. 우버 에어비앤비는 공유경제 시장을 개척해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을 넘어 ‘데카콘’(100억달러 이상) 기업으로 성장했다.

leek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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