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에너지 심장’ 격인 텍사스가 수십년만의 맹추위로 전례없는 에너지난에 빠졌다. 17일(현지시간) 기준 270만가구에 전기가 끊겨 있다. 사흘째 대규모 정전이다. 미국 본토의 4분의 3이 눈으로 뒤덮이는 등 이례적 한파로 미국 대부분이 얼어붙었지만, 텍사스만 유독 다른 주에 비해 심각한 재난 사태를 겪고 있다.
텍사스는 한파가 본격화된 지난 15일부터 도매 전력 가격이 메가와트시(MWh)당 9000달러를 웃돈다. 지난 12일 대비 약 3500% 폭등한 가격이다. 천연가스 스팟(현물) 가격은 일주일 전 대비 약 100배 뛴 1000달러 선을 넘겼다.
에너지 확보에 급급해진 텍사스주는 17일 각 에너지기업에 가스와 전력을 주 밖으로 유출하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렸다. 텍사스는 평소엔 천연가스 일부를 멕시코로 수출한다. 텍사스 당국은 전력 복구 일정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먼저 도마에 오른건 텍사스 송전망을 운영하는 전력신뢰도위원회(ERCOT)다.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는 17일 "ERCOT은 지난 48시간 동안 전혀 신뢰성 없는 모습을 보였다"며 ERCOT에 대해 조사를 명령했다. 텍사스주 의원들도 "주 전체 정전사태를 볼 때 텍사스 전력망의 신뢰성이 의심간다"며 "향후 극한 기후 현상을 겪으면 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청문회 소집을 요구했다.
독립 전력 공급망을 쓰는 주는 미국 본토 내에선 세 곳 뿐이다. 이중 텍사스만 유일하게 다른 주와 송전망을 연계하지 않았다.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 다른 주를 도와줄 수도, 다른 주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는 얘기다. 뉴욕도 독립 전력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다른 주에서 전력 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드를 짰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텍사스는 다른 주에 비해 공급예비력도 낮아 이번 한파에 타격이 컸다. ERCOT은 텍사스 전력 공급예비율을 지난 10년간 기존 20%에서 10%대로 내렸다. 텍사스는 다른 주와 달리 각 에너지기업에 3년간 전력 공급을 미리 보장하도록 하는 ‘용량시장’도 운영하고 있지 않다.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한국과 달리 여러 에너지기업이 경쟁하는 방식인 에너지 시장에서 전력 공급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각 주가 도입한 제도다.
이때문에 주요 발전원이 죄다 불안정했다. ERCOT에 따르면 작년 텍사스는 전력 생산의 44%를 천연가스에 의존했다. 이중 약 절반이 석유 생산과정 부산물로 나왔다. 그런데 한파에 유정과 석유 정제시설 가동이 중단되면서 천연가스 공급이 끊겼다. 천연가스 수송시설(파이프라인)도 동결 문제로 운영이 여럿 중단됐다. 연쇄적으로 전력 생산도 줄게 됐다. 텍사스 발전원 비중 19%인 석탄도 일부 발전시설 가동에 차질이 일었다.

작년 전력생산의 11%를 차지한 원자력은 개중 그나마 안정성이 높았다. 텍사스주 원자력발전소 네 곳 중 세 곳이 100% 출력을 유지했다. 한 곳은 급수펌프가 얼어붙어 전력 공급을 하지 못했다.
가장 한파 타격이 컸던 발전원은 풍력과 태양에너지다. ERCOT에 따르면 작년 텍사스는 전력의 24%를 풍력으로, 2%는 태양열과 태양광등 태양에너지를 통해 생산했다. 폭설에 날씨가 흐려지면서 태양에너지 발전은 제 역할을 못했다. 텍사스가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들인 풍력발전시설은 터빈이 얼어붙어 절반 가량 가동이 중단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텍사스는 그간 풍력과 태양에너지 의존도를 높였는데, 이 에너지원은 매일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는 없다”며 “결국 전력망 안정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NBC는 “전력 공급을 거의 전부 재생에너지에 의존하려 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 경고가 된 사태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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