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투자 해라, 말아라”…정치권 외풍 시달리는 국민연금

입력 2021-02-19 10:42  

≪이 기사는 02월17일(04:25)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한국판 뉴딜, 공공주택 확대 등 정책 사업에 투입하려는 정부·여당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투자 비전문가인 정치인들이 연기금의 정상적인 투자 활동을 '위험한 투자'로 몰아가는가 하면, 투자 결정 과정에 간섭하려는 시도까지 이뤄지고 있다. 정부·여당이 정책 추진에 부족한 재원을 메꾸기 위해 국민의 노후자금을 사용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여당 핵심서 제기되는 국민연금 동원론

지난 8일 대정부질문에서 여권 핵심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내 연기금이 해외 부동산에 150조원을 투자하는데, 이를 주택마련으로 돌려야 한다"고 발언했다. 부동산 값을 잡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추진하는 현 정부 정책에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의원의 발언은 특정 위원 개인의 견해가 아닌 현 정부·여당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는 평가다. 지난달 26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연기금,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가 상업용 부동산보다는 생산적인 부문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넘치는 시중 유동자금이 뉴딜기업에 투자되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도록 하는 선제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여당 '경제통' 김진표 의원도 같은 달 2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연기금의 해외 부동산 등 금융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며 "매도 회수자금으로는 한국판 뉴딜에 투자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전체를 아우르는 투자 가이드라인을 통해 연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를 통제하겠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광재 의원은 여당의 K뉴딜위원회 총괄본부장, 김진표 의원은 여당 당 대표 직속 기구인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정부와 의석 180석 거대 여당이 연기금 자금을 한국판 뉴딜(국내 경기 활성화), 공공임대주택(부동산 가격 안정)에의 투입임을 천명한 셈이다.



이 같은 시도는 문재인 정부 한국판 뉴딜 정책의 모태가 된 노무현 정부의 2004년 판 '한국형 뉴딜'의 반복이다. 당시 정부와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은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시설(SOC), 공공임대주택, 학교시설, 노인요양시설 등을 건설하는 10조원 규모 한국형 뉴딜 사업에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여유재원을 활용하겠다고 발표해 논란을 빚었다.

국민연금을 국책 사업에 동원하려는 시도는 한국판 뉴딜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시도돼왔다. 여당은 2019년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불거지자 국민연금의 일본 기업 투자 축소와 극일을 위한 소부장 투자 확대를 압박했지만 수익성과 안정성 확보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2020년엔는 정부가 핵심 경제정책으로 밀어붙인 벤처투자 확대, ESG(환경·사회·지배구조)투자 확대를 정부·여당 차원에서 국민연금에 요구하기도 했다.

그간 일부 정치인이나 정부 인사의 견해 수준으로 마무리된 종전의 아젠다들과 달리 정부·여당이 합심해 추진 중인 한국판 뉴딜에의 동원은 국민연금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과 관련된 굵직한 정책 결정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한다. 장관은 위원장으로 안건을 부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정책이 복지부를 거쳐 기금위 안건으로 떠오를 수 있는 셈이다.

기금위는 장관을 포함 기획재정부 차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정부 측 위원 6명과 사용자, 근로자, 기타 가입자 단체가 추천한 14명의 민간 위원들로 구성된다. 표면적으론 다양성을 갖췄지만 KDI, 보건사회연구원, 참여연대, 농협, 수협 등 정부·여당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집단으로 구성돼 정부 측의 정책 추진에 유리한 구조다.

◆"고갈 예고된 국민연금...손실 나면 누가 책임지나"

전문가들은 국민 노후자금으로 조성돼 사실상 주인이 없는 국민연금을 정부·여당이 쌈짓돈처럼 활용하는 것에 대한 경계하고 있다. 투자 전문가들의 독립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기금이 운용되는 것은 투자의 왜곡을 불러일으켜 고갈이 예고된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재정수지는 2040년 적자로 전환됐다가 2054년에는 고갈될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투자업계선 기금운용수익률이 1%포인트 낮아질때마다 고갈 시기가 5년 가량 앞당겨질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수익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매력적인 자산이라면 누가 압박하지 않더라도 투자하게 돼있다"며 "정부 요구에 따라 투자했다가 더 높은 수익을 포기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을 향한 정치권의 요구는 수익률로도 증명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 간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을 분석해보면 국내 자산의 평균 수익률은 3.69%, 해외 자산은 10.06%를 기록했다. 위험 대비 수익률 수준을 의미하는 샤프 비율 역시 같은 기간 해외 투자가 1.22로 국내투자(0.63)보다 높았다. 부동산 투자가 전체 자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대체투자 수익률은 1988년 국민연금기금 설정 이후 8.89%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간 8.76%로 해외주식에 이어 자산군 가운데 두번째로 높았다.

이 같은 데이터에 기반해 국민연금은 전략적으로 해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2024년까지 현재 30%대인 해외투자 비중을 50%까지 늘리고, 11% 수준인 대체투자 비중을 15%까지 확대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내놓은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의 공격 대상이 된 해외 부동산에 대해선 알리안츠, 하인즈, 네덜란드연기금(APG)등 글로벌 투자자와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고 뉴욕, 싱가포르, 도쿄, 상하이 등 글로벌 대도시 내 핵심 입지에 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가격 조정이 이뤄진 우량자산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현금흐름이 안정적이고, 경기 하강 국면 및 금융 시장 조정에 대한 대응력이 높은 자산에 대한 투자를 통해 기금 포트폴리오 전체의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국민연금 측의 설명이다.

한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 대표는 "장기 투자자인 연기금은 지역별, 자산별, 리스크 유형별 포트폴리오 분산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률을 낼 필요가 있고, 현금흐름이 꾸준한 오피스 등 상업용 부동산은 대체투자의 핵심"이라며 "우량 부동산 투자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리스크가 더 큰 주식이나 비상장 벤처투자,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 공공임대주택 개발에 투입하는 것은 운용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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