兩李에 묻힌 스펙끝판왕 정세균…'총리 징크스' 깨고 존재감 어필할까

입력 2021-02-21 17:33   수정 2021-03-02 18:28


6선 국회의원, 산업자원부 장관, 집권 여당(열린우리당) 대표, 국회의장, 국무총리. 한국 정치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만큼 화려한 이력을 지닌 인물도 드물다. 정 총리와 가까운 여권 인사들은 하나같이 “정치인 정세균의 단점은 이력과 역량에 비해 여론 지지도가 안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3~4%에 머물고 있는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이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다. 정 총리도 이런 지적에 대해 “제가 ‘자기 정치’를 하는 데 조금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러던 정 총리가 최근 달라졌다. 자영업자 손실보상제 등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권주자인 이낙연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와 날 선 신경전을 벌이는가 하면 국회 본회의장에선 야당 의원들에게 언성을 높이며 맞서기도 한다. ‘여대야소(與大野小)’였던 18대 국회에서 야당(민주당) 대표를 맡았을 때(2008~2010년)도 잘 보이지 않던 모습이다. 여권 관계자는 “내년 3월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자기 정치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고 했다.
정 총리, ‘제3 후보’ 공간 모색
정 총리는 작년 말 정책 자문을 얻기 위해 보건·의료, 그린뉴딜, 국민 소통 분야 특별보좌단과 자문 위원단을 구성했다. 총리가 정식 직제를 꾸려 특보와 자문위원을 둔 것은 처음이다. 여권에선 정 총리의 본격적인 대권 플랜이 이 무렵 가동된 것으로 보고 있다. TV·라디오 방송 출연과 지방 방문, SNS 글 게재도 최근 부쩍 늘었다. 정 총리는 올 들어서만 9차례 방송 인터뷰에 나왔다. 코로나19 대응을 지휘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례적 행보라는 평가가 많다. 지지도 교착 국면을 ‘대화’ ‘소통’에 능하다는 장점을 이용해 돌파해 보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됐다.

여권에선 정 총리의 빨라진 대권 행보가 최근 이낙연 대표의 지지율 정체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총리 시절 40%대까지 올랐던 이 대표의 지지도는 최근 1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민주당 한 중진은 “이 대표의 지지율 침체 상태가 계속되면 당내에서 이재명 지사를 견제할 수 있는 ‘제3 후보론’이 급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대표처럼 호남(전북)이라는 지역 기반을 갖춘 정 총리가 그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 총리는 지난달 이 대표가 제안한 ‘코로나19 이익공유제’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고, 기본소득제와 전 국민 재난 지원금을 주장한 이 지사를 향해서도 “쓸데없는 곳에 전력 낭비하지 말라”며 여러 차례 비판했다.
‘미스터 스마일’의 한계
총리실 주변에선 전임 총리인 이 대표와 정 총리의 리더십 비교가 자주 입에 오른다. 이 대표가 ‘사이다’ 직설 화법을 써가며 강한 리더십을 보였다면, 정 총리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것이다. 정 총리는 “장관들을 깨는 시늉이라도 해서 존재감을 어필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을 때마다 “같이 고생하는데 어떻게 그러느냐”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당대표 시절 정 총리를 보좌한 한 인사는 “정 총리는 원체 적을 만드는 걸 싫어한다”며 “당 회의 때 기사화될 만한 ‘센 워딩(발언)’을 원고에 써드리면 펜으로 죽죽 긋고 굉장히 순화된 단어로 고쳐 읽었다”고 했다. ‘미스터 스마일’이란 온건한 이미지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런 평가가 정 총리의 향후 대권 가도에 ‘득’보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여권 관계자는 “좋게 말하면 부드럽고, 나쁘게 얘기하면 무색무취의 이미지 탓에 정 총리의 발언은 임팩트(강렬한 인상)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정 총리도 작년 1월 총리에 오른 뒤 측근들에게 종종 “KBS 뉴스 앵커와 나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농담조로 말했다고 한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인성교양학부 교수는 “정 총리가 중재, 통합의 가치를 중시하는지 몰라도, 인물 중심의 선거전인 대선에선 강하게 치고 나가거나 면면이 새로운 사람이 각광받는다”며 “‘팬덤 정치’가 만연한 요즘 세태에선 더더욱 색이 선명한 사람이 지지세를 끌어모은다”고 했다.

총리 출신은 대통령이 되기 힘들다는 이른바 ‘총리 징크스’도 넘어야 할 벽이다. 박정희, 김대중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김종필 전 총리와 대권 도전에 세 번 실패한 이회창 전 총리를 비롯해 최근 황교안 전 총리까지 대권 물망에 올랐던 모든 총리가 마지막 허들을 넘는 데 실패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총리 출신은 오랜 기간 미디어에 노출돼 신선함이 덜하고, 전임 정부 실정(失政)에 대한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해 대선 레이스 완주가 쉽지 않다”고 했다.
친문 진영 지지 확보가 첫 관문
여권에선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작년 말 2022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누가 그의 ‘빈자리’를 채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표와 이 지사가 지지도 1, 2위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둘 다 뚜렷하게 친문 주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정 총리는 범(汎)친노(친노무현)계로 분류되면서도 과거 친문(친문재인) 핵심과는 거리를 뒀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 경쟁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한 뒤 친문 지지층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친노·친문과의 친밀성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산업자원부 장관을, 문 대통령이 총리를 시켜줬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식이다. 취임 1년을 맞은 지난 1월에는 SNS에 “국민 여러분과 함께 포용과 혁신, 공정과 정의, 평화와 번영의 길을 걷겠다”고 썼다. 그보다 앞서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포용, 회복, 도약, 평화’ 메시지와 같은 맥락이다. 한 민주당 인사는 “정 총리가 친문의 절대적 지지만 얻는다면 민주당 대선 구도가 크게 뒤바뀔 수 있다”고 했다. 기업인(쌍용그룹 상무) 출신으로서 ‘경제 총리’를 취임 일성으로 내세웠던 만큼 코로나19의 성공적인 방역과 경제 회복도 정 총리의 대권 도전을 위한 선결과제로 꼽힌다.

하헌형/서민준/송영찬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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