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김홍도가 펼친 사실의 세계

입력 2021-02-22 17:52   수정 2021-02-23 00:17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세한’과 ‘평안’ 기획전을 열고 있다. ‘세한’은 그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소장했던 손창근 씨가 국가에 기부한 기념전시회이기도 하다. ‘평안’은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세 점의 ‘평안감사향연도’를 원본과 디지털 콘텐츠로 결합한 특별전이다. 세한도는 당대의 석학이 그린 문인화이며, 향연도는 도화서의 전문화가가 그린 일종의 기록화다. 두 작가의 출신이나 성향만큼 그림도 큰 차이가 있다.

세한도는 8년간 제주 유배 시절 추사 자신의 심정을 추운 겨울날 쓸쓸한 풍경으로 그려냈다. 마치 글씨를 쓰듯 먹선의 진함과 흐림만으로 그린 흑백화이며, 소박한 집과 몇 그루의 나무뿐 배경 묘사도 없이 휑한 여백의 단순한 구도다. 향연도는 평양에 부임한 평안감사의 환영 잔치를 그린 ‘부벽루에서 열린 잔치’, ‘연광정에서 열린 잔치’, ‘달밤의 뱃놀이’ 3점이다. 수백 명의 등장인원과 배경 건물, 풍경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려한 채색화다. 그렇다고 단순 기록화는 아니다. 수백 명 인물 하나하나의 동작과 표정이 살아있으며, 연회의 구성과 내용을 꿰뚫어 그 시간적 순서마저 적절한 구도 속에 표현하고 있다.

조선 문인화는 사의, 즉 지식인인 작가의 뜻과 심정을 그린 그림이다. 매란국죽의 사군자화는 식물인 매화와 난초, 대나무가 아니라 고고한 절개라는 군자의 심성을 그린 일종의 상징화다.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쟁이의 재주일 뿐이라 천대했던 사실주의 전통은 겸재 정선에 가서야 진경산수로 부활한다. 단원은 진경산수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그 특유의 풍속화적 내용을 접목해 집대성한 위대한 화가다.

예를 들어 단원의 산수화는 풍경뿐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사찰 등 시설물의 특징까지 잡아내고 있다. 오대산 월정사나 금강산 표훈사 그림은 사찰의 건축적 배치구조까지 정확히 묘사했다. 진경(眞景)을 넘어 사경(寫景)이라 불러야 할 경지다. 15년 전 불타버린 낙산사 재건에 단원의 낙산사 그림은 중요한 복원 근거가 됐다.

평안감사향연도 역시 사람과 행위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사경기록화다. 주인공인 평안감사는 무표정한 정물로 그렸지만, 연희 출연진이나 구경꾼들의 동작과 표정은 다양하게 살아있다. 부벽루나 연광정의 모습뿐 아니라 대동강과 능라도, 평양의 골목길까지 섬세하게 묘사했다. 부벽루 연회도에는 궁중정재의 순서와 특징들이, 연광정 연회도는 학춤과 사자춤 등 민속공연의 진수가, 밤 뱃놀이에는 평양의 도시적 풍광과 백성들의 감정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김홍도는 인간과 사물과 자연이라는 모든 사실에 관심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를 대상으로 화가가 해석하고 표현한 그림이기에 더욱 진실한 세계다. 단원의 그림은 그 어떤 문자기록보다 18세기 조선과 평양의 진실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펼쳐준다. 전시회에 가서 그 역사적 사실과 예술적인 진실의 세계에 들어가시길 ‘강추’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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