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끊은 뒤 새 세상이 열렸다

입력 2021-02-25 17:32   수정 2021-03-05 18:30


로마의 검투사, 올림픽에서 9개의 금메달을 딴 ‘총알 탄 사나이’ 칼 루이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로 기네스북에 오른 파트리크 바부미안,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 루이스 해밀턴, 세계적인 울트라 마라톤 챔피언 스콧 주렉…. 이들의 공통점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신체 기량을 뽐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채식을 한다.

이들은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 성룡이 공동 제작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The game changers)’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는 이들의 사례와 함께 과학적인 증명과 실험에 근거해 인류가 언젠가부터 믿어온 ‘동물성 단백질=힘·건강’이란 통념을 뒤집는다. 인간이 육류 섭취를 위해 가동하는 대규모 공장식 축산업이 인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낱낱이 고발한다.

‘비건=채식주의자’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비건은 단순한 식습관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과 환경 보호, 윤리적 소비를 아우르는 하나의 이념이라는 게 더 적절한 해석이다. ‘비거니즘’이란 단어가 쓰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거니즘은 동물권을 옹호하고 종(種) 차별에 반대하는 사상과 철학이다. 동물을 착취해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거부한다. 이념과 건강을 이유로 최근 채식, 비건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인류는 탄생부터 단백질 부족에 시달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엔 사냥을 했고, 다음엔 가축을 길렀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공장식 축산업이 탄생했다. 덕분에 동물성 단백질을 싼 가격에 손쉽게 섭취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업에서 동물들은 잔인하게 학대당하고 죽어간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남기는 게 목적인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동물 한 마리를 키워서 제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시간은 짧을수록, 비용은 적을수록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현대판 홀로코스트’라고 비건들은 비판한다.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는 “공장식 축산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 중 하나”라고 했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동물은 인간의 식욕과 아름다움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일까. 아니면 이제부터라도 보호해야 할 대상인가. 그렇다면 그 대상은 어디까지인가.

인간은 엄마와의 탯줄이 끊기는 순간부터 나(우리)와 남(타자)을 구분짓기 시작한다. 판단과 울타리를 치는 일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비건은 나의 경계를 넓힌 이들이다. 동물과 환경까지 포용한다. 그들이 오늘도 묻는다. 당신에게 타자는 어디서부터냐고.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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